[중앙 시평] 이공계 전공, 왜 매력적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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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제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이 50일도 남지 않았다. 지금쯤 학생과 학부모들은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마지막 점검을 하고,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지원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자연계열 학생들에게 의치대나 약대 등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전공을 맹목적으로 선호하지 말고, 공과대학이나 자연과학대학 학과도 진지하게 고려해 보도록 권고하고 싶다.

*** 현실보다 과장된 進路 불안감

사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이공계 기피현상은 장래 진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주요 원인이다. 어려운 공부를 해도 취직이 잘 안되며, 어렵게 취직하더라도 구조조정 1순위로서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선입견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감은 현실보다 과장돼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얼마 전 한 신문에 '갈수록 바늘구멍 이공계 취업현장'이라는 제목으로 "올해 서울대 등 소위 5개 명문대학 물리학과 졸업생 중 16%만이 전공 관련 직장을 구했다"는 기사가 실린 일이 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초점을 잘못 잡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물리학과 같은 순수과학 전공자는 학사로 취직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고 석.박사를 취득한 후 취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대학을 졸업한 첫해의 전공 취업률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대 물리학과의 경우 군복무와 박사학위를 끝내고 취업할 시점인 대학 졸업 후 10년 뒤의 전공취업률을 살펴보면 70%선에 다다른다. 이러한 사정은 서울대의 다른 순수과학 학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취업하더라도 이공계 전공자들은 구조조정을 쉽게 당한다는 인상도 과장된 측면이 많다. 물론 의사나 변호사처럼 철밥통은 아니지만, 의사가 전문의 자격을 따는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취업하게 되는 박사학위 소지자의 경우 지난 IMF 외환위기 때에도 조기 퇴직당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이공계 박사학위자의 85%가 대학이나 정부출연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어 대부분 61~65세의 정년까지 근무한다. 최근에는 출연연구소의 경우 능력있는 연구자는 정년 후에도 계약을 통해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길도 열렸다.

45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라는 말이 유행하는 시대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60세 이상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운인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 이공계 학생들의 전망을 밝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인은 국내 대학의 수준이 높아져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인재가 배출되면서 이들에 대한 국내외의 기회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미국 등 선진국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으며, 국내 대학 교수 임용에서 국내 박사가 외국 박사를 누르는 일은 이제 뉴스거리도 되지 못한다.

기업의 임원도 이공계 출신이 늘어나서 민간 10대 그룹의 경우는 이미 임원의 절반을 넘었고, 이공계 출신 공직자를 대폭 늘리겠다는 참여정부의 방침이 시행되면 앞으로 이공계 전공자의 사회진출 기회는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이처럼 기회는 늘어나는 데 비해 최근 수년간의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능력있는 인재들의 유입이 줄었기에 벌써 인재 고갈 증세가 나타나고 있다. 기업체에서 인재에 목말라하는 것은 이미 오래 되었고, 이제는 대학에서도 마땅한 인재가 없어 교수 채용을 못하는 일이 생기고 있다.

*** 기업임원.공직 진출 전망 밝아

물론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이공계 출신은 사회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의사나 변호사 같은 자격증의 프리미엄이 너무 높아 이공계 출신의 상대적인 박탈감을 부추겨왔다.

그러나 사회가 투명해지면서 이 같은 불평등은 개선될 것으로 기대되며, 특히 지식기반 사회가 발달되면서 이공계 전문인력의 수요는 증가할 것이다.

지금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현재의 인기보다 자신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20~30년 뒤의 사회를 전망하며 전공을 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기의 적성과 능력에 맞으면 이공계 전공도 보람있고 전망있는 선택이 될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교수.물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