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20년 뒤의 추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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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샌드위치 휴일까지 낀 덕분에 닷새간의 황금 연휴가 된 추석이었다. 신문사의 속성상 추석이래야 이틀 연휴가 고작이었던 나도 26년 만에 처음으로 나흘(!)이나 거푸 쉬었다.

출근한 날 동료에게 모처럼 느긋하게 편안한 추석을 보냈겠다는 식으로 말을 건넸더니 웬 걸? 아이들과 성묘가려고 두 차례나 집을 떠났다가 고속도로에 들어서지도 못한 채 차를 돌렸다는 푸념이 돌아왔다.

하기야 추석날 아침 아랫녘이 태풍 '매미'로 혼비백산할 때도 서울의 끝자락 자유로에는 통일동산과 인근 묘역을 찾는 자동차의 행렬이 한없이 이어지지 않았던가.

결혼을 앞두고 맞은 추석 전날 한복을 떨쳐입고 시댁에 들렀다가 얼떨결에 송편을 빚으며 혹여 흉이라도 잡힐까봐 내내 마음 졸이던 20년 전이나, 차례상 차림에 참견해 가며 음식을 내오는 지금이나 내 가슴의 떨림만 달라졌을 뿐 추석의 정경이야 변할 리 없다.

나이든 부모가 여전히 낡은 고향집을 지키고 있고, 양지 바른 언덕배기엔 조상의 무덤이 드문드문 얼굴을 내밀고 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은 부모를 정점으로 모여들어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조상묘를 손질한다. 북새통을 피하느라 미리 벌초를 다녀오기도 하고, 여행지에서 어물쩡 차례를 지내는 가정도 있다지만 대세가 되기엔 역부족이다.

근래 사회적 화두가 된 '명절 증후군'만 해도 일견 요즘 여성들이 앓는 현대병처럼 보이지만, 선각자 나혜석이 1930년대 신문삽화 '섣달대목'으로 일찌감치 명절이 여성들에게 고단한 날임을 고발한 것을 떠올리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언제까지 이런 추석이 가능할까. 나는 식솔과 함께 고향을 찾는 자식군의 주축인 30~40대가 '민족의 대이동'을 연출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첫째, 출산율의 감소다. 60년 6.0명, 70년 4.54명이던 출산율은 이제 1.17명에 불과하다. 90년대부터 1명대로 내려앉은 출산율은 '가(家)'의 울타리 속에서 안온함을 나눌 수 있는 피붙이의 절대부족을 예고한다.

둘째, 장묘의식의 변화다. 중부대 김태복 교수가 최근 조사한 장묘문화 의식 실태는 화장을 원하는 이가 63.9%로 절대다수임을 보여준다. 더욱 연령이 낮을수록 화장률은 높아져 50대는 58.1%지만 20대는 67.6%나 된다.

부모 장례는 72.2%가 매장을 원하는 것과 엄청난 차이다. 조상묘에 대한 인지도 낮아져 40~50대의 경우 열 사람에 세 명꼴로 4대조 이상의 조상묘를 알고 있지만 20대는 채 한 명꼴도 못 된다. 성묘 문화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셋째, 가족 형태의 변화다. 가족학자들은 미래 가족의 종착지가 '외톨이 사회'일 것으로 진단한다.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를 거부한 채 사실상 부부로 한 지붕 아래 살아가는 동거 가족이나,'나홀로 가족'의 자유로움을 즐기는 독신자의 증가는 미래 가족의 보편적 모습이기도 하다.

더욱이 초등학생까지 해외 유학길에 오르고 있는 요즘 추세를 감안할 때 한 가족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지구촌 시대가 결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허황된 것은 아니다.

20년 뒤 추석날 아침을 함께 할 일가친척의 얼굴을 한 번 떠올려 보라. 쓸쓸한 추석은 그렇게 서서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니 명절 후유증을 앓는 남편과 아내들이여, 가벼운 호주머니로 마음마저 무거웠던 지난 추석이 운전과 일가의 뒤치다꺼리 속에 스트레스만 넘쳤다고 불평하지 말자. 괴롭고 짜증나는 일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다음에는 못내 아쉽고 그리운 추억일 수 있으니.

홍은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