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소 잃고 외양간 고친' 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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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평택 미군 부지에 근무 중인 군 장병에게 경계봉과 방패를 지급하겠습니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8일 오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자청했다. 4일 병사들이 시위대에 두들겨 맞아 부상한 데 대한 따가운 여론 때문인지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국방부 홈페이지엔 이날도 군의 대응을 질타하는 네티즌의 글이 속속 올라왔다.

대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군 장병들에게 보호 장비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군 부지를 침범한 시위자에게 군 형법을 적용하겠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윤 장관이 내놓은 대책은 때늦은 감이 있다. 처음부터 비무장 상태에서 작전 중인 장병들에게 최소한의 보호 장구라도 지급했던들 이런 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았을 가능성 때문이다. 국민이 실망하고, 분노하고 군의 사기가 떨어진 이유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사태는 군의 대응 능력에 대한 의문도 키웠다. '작전'의 전제는 정확한 정보다. 모든 작전계획엔 시나리오가 들어 있다. 이번에 평택에 들어간 시민단체의 시위가 단발로 끝날 것으로 봤다면 우리 군의 판단 능력은 형편없다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평택 범대위 등 단체들이 미군 부지 점거에 들어갈 가능성은 이미 예고됐었다. 이들은 지난달 국방부가 수용 부지의 농수로를 콘크리트로 폐쇄하자 하루 만에 이를 원상복구시켰다. 시위대의 반격은 시간 문제였던 것이다.

이 때문에 군내에선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합동참모본부는 병력을 비무장 상태로 투입할 수 없다고 했지만 국방부는 비무장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는 후문이다. '비무장 무대응'을 결정한 국방부의 고민은 이해가 가는 측면도 없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군인과 민간인의 충돌이 갖는 폭발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경찰과 협조해 미리 전경을 배치하지 않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윤 장관은 큰 희생을 치르고 나서야 두 가지 대책을 내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부상 장병들의 육체적.정신적 고통과 군에 대한 불신은 어떻게 치유할 건가. 이런 식의 병력 운용이라면 누가 믿고 사랑하는 자식을 군에 보내겠는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