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마이동풍 교육개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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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현 정권 역시 집권 이후 많은 부문에서 인식과 태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특히 대외개방과 노동문제에서 그러하며,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일부 정책적 변화로 연결되곤 하였다. 그러나 현 정권이 초지일관 요지부동으로 일관하고 있는 분야가 있으니, 이는 곧 부동산과 교육정책이다. 이 두 분야에서는 거의 무조건적인 자세로 여론의 비난과 전문가의 분석이 어떠하든지 간에, 그리고 세계의 흐름이 무엇이든지 간에 정권 실세들의 의지를 고집스럽게 정책으로 관철하고 있다.

최근 정부는 부동산 문제에서는 재개발 이익을 환수하겠다는 초헌법적 조치로, 그리고 교육문제에서는 대학입시에 내신의 비중을 일률적으로 50%까지 올리라는 강압적 조치로 그 의지를 대내외에 천명해 많은 사람을 새삼스럽게 놀라게 하고 있다. 이 중 특히 교육문제는 일부 지역, 그리고 한 세대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어서 더욱 큰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현 정부 교육정책의 첫째 문제점은 엄연히 존재하는 고교 간 학력격차라는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공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학업성취도 국제비교연구(PISA) 수학평가시험의 결과에 따르면 어느 고교는 전교생이 전국 상위 40%에 들어가는 반면 다른 고교는 한명도 전국 40%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내신 비중을 높인다면 타 고교와의 경쟁 필요성이 감소하며, 자기 학교 안에서만 경쟁하는 전형적인 하향평준화 식의 학력저하가 나타날 것이다.

또 전교조와 현 정부는 지나친 경쟁은 교육에 해롭다는 반(反)시장적인 논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는 경쟁의 선(善)기능을 부정할 뿐 아니라 왜곡된 경쟁을 초래할 수도 있다. 우리보다 앞서 평준화교육을 시행했던 미국과 영국의 경우 지난 30여 년간 지속적인 학력 저하가 큰 사회문제가 되었으며, 이를 타파하기 위하여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는 학교 간의 경쟁을 통한 학력상승에 매진하고 있다. 또 지나치게 내신을 강조하는 조치는 오히려 왜곡된 경쟁을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즉 학생과 학부모들이 학력을 갖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기록부상의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경쟁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교육부의 개혁조치는 다분히 반민주적이다. 만일 사립대학이 마음대로 학생을 뽑을 수 없고, 원하는 수준의 등록금을 책정할 수 없으며, 자신들의 뜻대로 기부금을 받을 수 없으면 말만 사립대학이지 국립대학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는가.

현재 세계 100위권에 들어가는 대학이 단 한 개도 없는 현실에서, 한국의 대학들은 수년 안에 세계적 수준에 진입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학교육에 대한 공적 지원은 OECD 평균에 비해 크게 뒤진 상태에서, 그나마 각종 권위적인 규제로 대학들을 가두어 두는 것은 마치 두 손을 묶어 놓은 채 경쟁하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와 같이 반현실적.반시장적.반민주적 교육개혁은 이미 개방된 교육여건으로 인해 더욱 큰 부작용을 양산할 수 있다. 현재와 같이 얼마든지 외국에 나갈 수 있으며 또한 곧 외국 대학도 국내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과연 한국의 고교생들이 얼마나 한국식 교육제도를 택할 것인지 의문스럽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들을 아무리 지적해도 이러한 주장이 정책에 반영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현 정부는 마치 종교적 신념과 같이 부동산과 교육문제에서만은 그 누구의 비판에도 귀를 막은 채 옹골차게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멀지 않은 장래에 언젠가는 현 정책의 부작용이 누적돼 대반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학력 저하와 교육의 국제경쟁력 낙후라는 큰 대가를 치른 후가 될 것이며, 그때 국민은 오늘의 위정자들이 문제의 근원을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두원 연세대·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