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아줌마] 디자이너들이여, 마케팅 전략도 디자인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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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지난달 20일부터 30일까지 서울 대치동 학여울 무역전시장에서 열린 서울컬렉션 패션쇼장. "끼아악~~~." 갑자기 괴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이런, 무슨 사고라도 난 건가? 쇼를 보기는커녕 사건 취재를 해야겠군." 착각도 잠시. 소동의 주인공은 유명 연예인의 등장이었다.

# 올 초에 찾았던 이탈리아 밀라노 컬렉션 패션쇼장. 패션쇼 시작을 앞두고 객석이 술렁거린다. 유명 수퍼 모델의 등장이다. 그래도 괴성은 들리지 않는다. 쇼의 피날레 장면에서 디자이너가 등장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온다. 그 열기가 웬만한 연예인은 저리 가라다.

같은 패션쇼인데 왜 이렇게 다를까? 이유를 말하자면 끝이 없다. 나라마다 패션 시장 규모와 참석자 층이 다르고, 브랜드 인지도도 다르다. 언뜻 패션 선진국과 우리를 비교한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가장 큰 이유는 국내에 스타 디자이너가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 대중이 알 만한 인지도 있는 디자이너가 부족하다 보니 패션쇼장에 초청된 연예인들이 주인공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물론 스타를 이용한 마케팅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대중의 일차적 관심은 어느 행사에서 어떤 연예인이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느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패션 선진국에선 연예인 못지않은 패션 아이콘이 있다. 바로 디자이너들이다. 이탈리아 패션 명가 구찌를 부활시킨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 톰 포드. 그는 실력은 물론 수려한 외모를 자랑하는 인물이다. 구찌 컬렉션의 주인공은 톰 포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2년 전 그가 구찌를 떠나 미국 최대 화장품 그룹인 에스티 로더로 자리를 옮겼을 땐 최고 인기가수가 소속사를 옮기는 것만큼 엄청난 화제를 뿌렸다. 이 밖에도 크리스찬 디올의 존 갈리아노,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쟁쟁한 스타 디자이너들이 외국엔 많다.

스타 디자이너가 되려면 우선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러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들의 적극적인 마케팅 마인드다. '나서기'를 터부시하는 한국 문화라고는 하지만 21세기에 겸손함은 더 이상의 미덕이 아니다. 작업실에서 좋은 옷만을 만든다고 해서 대중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라는 말이다.

남성복 브랜드인 카루소를 이끌고 있는 장광효 디자이너는 근래 TV시트콤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컬렉션 입장권은 인터넷으로 판매가 되자마자 바로 동나버렸다. 유명 연예인이 모델로 무대에 선다는 소문이 난 다른 컬렉션과 함께 매진 사례를 기록한 패션쇼 중의 하나였다.

디자이너 앙드레 김도 마찬가지다. 진부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자기만의 스타일로 대중의 인기를 얻어 무시할 수 없는 파워를 키워 나가고 있다. 바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이지만 언론의 인터뷰라면 흔쾌히 응한다. 일 욕심을 물론이고 자신의 작품 세계를 알리려는 엄청난 홍보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이다. 의상은 물론 마케팅 전략도 디자인할 줄 아는 적극적인 디자이너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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