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자연 우리가 지킨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1면

달개비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탄천 식물 탐사에 나섰다. 이들은 연말에 『탄천도감』을 출간하기 위해 최근 탐사 횟수를 늘리고 있다. 신동연 기자

서울 송파구 석촌동에 사는 주부 송정란(35)씨와 중학교 1학년인 큰딸 다영이에게 매월 둘째.넷째 주 일요일 아침은 특별하다. 집에서 10여분 거리인 탄천에 나가 강동송파환경운동연합 선생님으로부터 식물 이름도 배우고 쓰레기도 줍기 때문이다. 송씨는 2년 전부터 뜻있는 주민들과 함께 '탄천모니터링봉사단'을 만들어 활동해 왔다. 잠신고등학교와 잠실중.정신여중.아주중학교 등의 학부모와 자녀 57명이 회원이다.

송씨는 "내가 사는 동네의 자연 환경도 돌보고 아이 교육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어 활동을 시작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다영이가 환경의 중요성을 이해하면서 주변에 대해 배려와 이해심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송씨는 "가족 전체가 참여한 회원도 세 가족이나 된다"고 소개했다.

탄천에 이 모임만 있는 게 아니다. 마천동에 사는 남유미(40)씨의 주말은 2년 전 '달개비'에 참여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모임은 한 달에 두 차례씩 탄천의 식물을 관찰한다. 달개비 회장을 맡고 있는 남씨는 "지금까지 탄천에서 모두 200여 종의 식물을 발견했다"며 "올 연말 회원들과 함께 사진을 곁들인 '탄천도감'을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달개비의 회원은 모두 16명이다. 우편배달원.목수.교사.주부.대학생.회사원.상인 등 직업도 다양하다.

지역 단위로 활동하는 '풀뿌리 자연지킴이' 모임이 늘고 있다. '숲.하천.습지.공원 등 내가 사는 동네의 소중한 자연 환경을 내 손으로 지키자'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서토덕 운영국장은 "최근 하천.숲 등을 돌보는 각양각색의 주민 모임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분당의 한 환경단체 관계자는 "풀뿌리 자연지킴이 모임의 증가는 2000년대 들어 거대 환경단체들의 활동이 한계에 부닥친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 규모 작아도 활동은 매서워=서울 도봉구 방학4동에 있는 5000평 크기의 쌍문 근린공원에는 가로등이 하나도 없다. 지역 주민들이 "밤에는 식물도 자야 한다"며 설치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2002년 도봉구청의 계획을 무산시킨 주민들은 아예 '쌍문 숲 살림'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이 단체는 주민들에게서 갹출해 1년에 한 차례씩 공원에서 주민 음악회도 열고 있다.

둔촌동 주공아파트 뒤편 1400평 규모의 습지는 주민 모임 '습지를 가꾸는 사람들' 덕분에 두 차례나 없어질 뻔한 위기를 넘겼다. 2000년 강동구의 12m 도로 개설 계획을 저지한 데 이어 관리 소홀로 습지가 쓰레기장처럼 변하자 2003년 말 경비를 모아 복원에 나섰다.

습지는 2004년 9월 다슬기가 발견될 정도로 옛 모습을 회복했다. 회원들은 구청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됐던 습지를 5월 중 개방할 계획이다.

이처럼 풀뿌리 자연지킴이 모임들은 회원 숫자는 적지만 활동은 매섭다. 쌍문 숲 살림의 회원은 8명이다.

◆ 환경 교사 역할도='푸른고양지킴이'는 2000년 경기도 고양시 계명산에 골프장 건설을 막은 직후 결성됐다. 현안이 해결되자 2004년부터는 매년 25명씩 초등학생들을 모집해 계명산 생태를 교육시키고 있다.

2001년 생겨난 '양재천환경사랑지킴이' 회원들이 강사로 나서는 환경 교실은 이 분야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대표 박상인씨는 "지금까지 6000여 명에게 자연환경 보호 방법 등을 교육했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inform@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 풀뿌리 자연지킴이는=거대 환경단체들에 비하면 풀뿌리 자연지킴이 모임은 골리앗 앞의 다윗 격이다. 대개 회원 숫자가 10명 안팎으로 단출하다. 거주지 주변의 특정 자연 환경을 지키는 데 상근 직원이나 사무실이 필요 없다. 일이 있을 때마다 회장이 전화 몇 통 돌려 순식간에 모인다. 정기 모임은 주로 회원 집에서 번갈아 가며 한다. '쌍문 숲 살림'은 공원에서 자주 만난다. 월회비는 5000~1만원 정도. 모자라는 것은 모일 때마다 갹출한 돈으로 충당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