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히스패닉 갈등 증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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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최근 미국서 폭발한 반이민법 반대운동을 놓고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쓰는 중남미계)과 흑인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주도세력인 히스패닉이 불법이민자 문제를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과 같은 차원으로 부각시키려 하는 까닭이다.

이에 많은 흑인들, 특히 흑인 지식층이 불쾌하단 반응을 보이고 있다. 흑인들이 합법적인 미국 국민임에도 차별을 받아온 것과 몰래 숨어들어온 히스패닉 불법이민자들이 처벌되는 것은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자신들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끌려와 100여 년간 온갖 고문과 학대를 받아왔지만 제 발로 걸어들어온 불법이민자들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흑인 인권운동가들은 아울러 세간의 관심이 불법이민자 문제에 맞춰지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불법이민 문제가 부각될수록 흑백 간 인종차별에 대한 관심이 소홀해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갈등이 일면서 최근 일부 흑인단체들은 공공연히 불법이민자 단속을 지지하고 나서기까지 했다. 일각에선 백인이 다수인 고용자들이 히스패닉과 흑인 간 갈등을 조장한다는 얘기도 돌고 있다.

물론 제시 잭슨 목사처럼 반이민법 반대운동을 적극 지원하는 흑인 지도자들도 많다. 잭슨 목사는 "과거 흑인 지도자들은 인종을 막론하고 소외된 모든 미국인의 인권 신장을 위해 투쟁했다"며 "흑인 인권운동과 불법이민자 문제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유사한 부분이 많다"고 밝혔다. 역사적으로 과거 미국 흑인들과 히스패닉들은 함께 투쟁하곤 했었다. 60년대엔 멕시코 출신 농장 노동자들의 지도자인 케사르 차베스와 흑인 인권운동의 아버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손잡고 인권투쟁을 벌였다.

그렇지만 요즘 들어선 중남미 출신 불법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는 흑인 노동자들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양쪽 간 반목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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