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피아노 한 대 2억여원…1년에 120대만 만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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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를 가리켜 20세기초에 운명이 끝난 악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바이올린에 비해 아직 발전의 여지가 많아요. 새로운 재료로 사용하면 건반의 무게를 더 가볍게 할 수도 있고 전자악기와의 결합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죠."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랜드 피아노(2억여원 상당)를 제작해 주목을 받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의 파올로 파치올리(53)가 내한했다.

지난 7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보리스 베레조프스키의 베토벤 협주곡 전곡 연주회에서 국내 첫선을 보인 길이 3백8cm, 무게 6백90㎏짜리 그랜드 피아노 '파치올리 F308'모델을 소개하고 국내 음악인들을 만나보기 위해서다.

이탈리아에서 사무용 가구 제조업자의 막내 아들로 태어난 파치올리는 페사로 로시니 음악원을 졸업한 피아니스트 출신. 부친의 가업도 물려받으면서 전공도 살리기 위해 다시 로마대에 입학,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1978년 베네치아 근교의 사칠레에 피아노 제조회사를 차렸다.

1981년 프랑크푸르트 악기 박람회 때 첫 피아노를 출품한 그는 수공으로 6개 모델의 그랜드 피아노만을 생산하고 있다. 연간 생산량도 연간 1백20대 이하로 제한했다. F308 모델에는 피아니시모를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여분의 페달도 달려 있다.

라자 베르만.알프레드 브렌델.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마르타 아르헤리치 등이 파치올리 피아노의 음색에 반했고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원.파리 국립음악원.볼로냐 시립극장 등에서 이 피아노를 갖춰 놓았다.

"피아노 제조방식은 재료.디자인.조립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죠. 바이올린 제조의 명인 스트라디바리우스가 특별한 악기를 만들데 쓰던 '붉은 가문비 나무'로 피아노 향판(響板)을 제작합니다. 깊고 부드러우면서도 밝고 선명한 음색을 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지요. 가구를 만들던 장인 정신에 현대 첨단과학의 연구성과를 접목시키고 있습니다."

1709년 피아노를 처음 발명한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1655~1731)가 태어난 파도바는 파치올리 피아노 공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다. 그래서 파치올리의 작업에는 피아노의 발상지인 이탈리아의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뜻도 담겨 있는 것 같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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