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만의 국감을 보고…박재창<숙대교수·의회행정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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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현대의회는 입법기관이라기보다는 통제기관이라 할 정도로 의회의 법률제정 기능과 사실조사 기능은 상호 보완적 관계를 갖고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의회와 행정부의 관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의회의 대행정부 사실조사활동은 의회의 입법의도와 그 의도의 실현을 위해 정부가 개발한 정책사업과의 합치성 정도, 그 정책사업을 집행하는 과정의 능률성 정도, 그리고 그 집행과정의 회계적 적실성과 경제성 정도 등을 계측해 보려는 것이다.
법률제정 활동은 그러한 사실조사 활동의 결과 얻어진 정보와 자료를 토대로 행정작용의 현재적 오류를 시정하고 장래적 행동지침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의회의 사실조사 양식 중의 하나인 국정감사는 정책개발을 위한 입법자료의 수집과 분석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되고 추진되어야한다.
그러나 24일 끝난 이번의 국정감사는 총체적으로 볼 때 정책개발의 차원보다는 지난 l6년간 누적되어온 행정적 오류나 비리의 단순한 적발과 폭로에 관심의 초점이 모아져 있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우선 정보의 수집, 관리면에서 볼 때 주로 고발이나 제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국회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어느 나라에서건 선거에 의하여 당선되기 때문에 의원 스스로가 어느 분야에 대하여 전문적 지식을 갖추거나 축적된 정보를 지니고 있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의원의 활동은 누가 제공하여 주는 어떤 정보에 의존하느냐에 따라서 그 성격이 규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고발이나 제보에 의한 정보는 본질적으로 정보수집과정 자체가 수동적이기 때문에 필요한 정보를 체계적이며 적극적인 양식에 의해 수집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안목에서 어떤 주제를 조망할수 없을 뿐아니라 정보의 진위 자체를 확인하기도 어렵다.
특히 국정감사는 대부분의 경우 증인이나 수감기관이 제공해 주는 자료나 정보로부터 이해의 출발점을 삼게되는데 이때의 정보들은 정보제공자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증진시키려는 의도에서 누락, 왜곡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정보나 자료에 의존하는 감사활동이 신뢰성 있고 적실성 있게 관리되기는 어렵게 된다. 정보수집상의 한계 때문에 증인의 진술에 위증의 심증이 가더라도 이를 계속해서 추궁할 수도 없으며 잘갈못된 정보에 의존해 제기된 질문이 국정감사제도는 물론 국회 전체의 권위와 신뢰를 저락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러한 정보 수집상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의회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서 대행정부 감사 자료를 개발하고 수정할 수 있는 기관을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국회 내부에 정책분석평가원과 같은 독립기구를 두어 상시적으로 행정기관을 관찰, 분석토록 하는 것은 물론 의원 각자의 요구에 따라서 필요한 부분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여 그 결과를 요구한 의원에게 적시에 제공토록 하면 현재 국회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오류와 난제가 해결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같은 기관이 있으변 국정감사과정에서 특별히 요칭되는 회계분석적인 시각에 의한 평가를 가능케 하며 전문과학기술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영역에 대한 감사작용도 용이하게 해 줄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예산회계 작성상의 필요한 정보획득을 위해 미국의회는 별도의 입법지원기구도 설치해두고 있다는 점도 상기해볼 가치가 있다.
이번 국정감사는 또한 접근시각면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20일이라고 하는 짧은 기간에 5백66개 기관의 방대한 영역에 걸쳐 감사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감사현장을 통해 어떤 문제점을 규명하거나 발굴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미리 준비된 연구·분석을 통해 문제의 본질을 규명한 후 감사현장에서는 이미 규명된 내용을 양식적 차원에서 확인하는 방식이 채택되었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도 감사작업의 상시화와 전문화를 촉진시킬 수 있는 국회내부의 독립 평가분석 기구가 필요하다.
증인의 관리 양식면에서도 문제점은 발견된다. 이번 감사에서는 증인을 마치 죄인 다루는 듯한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나 증인의 인권과 사생활 보호에 문제점이 드러났다.
증인은 범법자가 아니다. 설사 범죄의 혐의가 있더라도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누구라도 단지 국정감사에 협조하기 위해 출두한 참고인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의 인권과 사생활은 엄격하게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 증인이 변호인을 대동할 수 있도록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TV에 비쳐지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경우 증인에 대한 TV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감사현장의 관리면에서도 발언자의 순위와 발언시간 등에 대한 관행과 세부 규칙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겠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들이 의원이나 수감기관의 종사자들이 얼마나 진지하고 성실하게 국정감사에 임하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크게 좌우될 것임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감사에 임하는 의원의 도덕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며 국정감사가 국회의 권리인 동시에 국민에 대한 의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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