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승엽아, 힘 빼야 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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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공은 동그랗다. 동그란 방망이로 동그란 공의 가운데를 때리기는 아주 힘들다. 그것도 정지된 상태의 공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공이다. 그 움직이는 공도 때로는 아래에서 위로, 때로는 가운데서 바깥쪽으로 휘어지고 떨어진다.

타격은 그래서 어려운 기술이다. 타자의 손을 떠난 방망이가 공의 윗부분을 때리면 땅볼이 되고 아래쪽을 때리면 플라이볼이 된다. 그래서 타자들은 자신의 타구를 분석하며 스윙을 고친다.

땅볼 타구가 자주 나오면 '내가 공의 위쪽을 때리고 있다', 플라이볼 타구가 자주 나오면 '공의 아래쪽을 때리고 있다'고 진단하고 중심부분을 때리기 위해 스윙을 수정하는 것이다.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을 때 공의 위쪽을 때리는 경우가 많다. 의욕이 앞서거나 투수가 만만하다고 느낄 때, 타자들에게 이런 경향이 생긴다. 치려고 달려드는 타격자세가 나와서다.

복싱에서도 달려드는 상대를 받아치는 '카운터블로'가 KO펀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상대를 쫓아가 주먹을 휘둘러 KO펀치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타격도 투수의 공이 자신이 원하는 부분까지 도달하기를 기다렸다가 받아쳐야 중심을 때릴 수 있다.

이승엽은 16일 경기에서 네 타석 모두 땅볼타구를 때렸다. 이승엽이 한 경기에 네개의 땅볼 타구를 때린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플라이볼로 공을 띄워 장타를 만들어내는 이승엽으로서는 그만큼 의욕이 앞섰고 상대투수 키퍼, 이혜천의 공에 달려들었다는 뜻이다. 그것도 1,2타석에서는 키퍼의 초구에 방망이가 나가 1루땅볼과 투수땅볼로 아웃됐다.

기록의 문턱에서 자신의 '홈런공장'인 대구 홈구장에 돌아온 이승엽은 자신도 모르게 서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대구=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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