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파일] 주옥같은 한국 독립영화·애니 24편 DVD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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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요즘 상업영화 시장에서 DVD는 계륵 같은 존재다. 한국영화가 주축이 된 극장가의 눈부신 성장세와 반대로 비디오.DVD 같은 부가판권 시장은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DVD의 요긴함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주옥같은 영화를 안방극장에 모아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극장에서 찾아보기 힘든 희귀작이라면, 영화사의 중요한 사료의 복제본을 직접 소장하는 셈이다.

최근 영화진흥위원회가 독립영화협회.독립애니메이션협회와 펴낸 세 장의 DVD '매혹의 기억, 독립영화 vol.1.2'와 '한국독립애니메이션 collection 1'이 바로 이런 경우다. 충무로 바깥에서 만들어진 또 다른 우리 영화사를 작품을 통해 간추려 보는 기획이다. '매혹…'에는 현존하는 국내 최초의 독립영화'아침과 저녁사이'(1970년.20분)를 필두로 70~80년대와 90년대 독립단편이 5편씩 실려 있다. 특히 70년대의 단편 세 편은 모두 실험영화라는 점이 흥미롭다. 열악했을 제작 여건 속에서도 흑백의 색채를 뒤집거나 이미지의 충돌.기하학적 구도 등으로 저마다의 표현방식을 실험한다. 단편영화가 상업영화 데뷔의 전초적 격이 된 요즘과 달리, 단편영화 자체로 '반(反)충무로'적인 가치를 추구했다는 것이 부가영상에 실린 감독들의 말이다. 광주항쟁의 상처를 풍자적으로 그려낸 김태영 감독의 '칸트씨의 발표회'(87년.35분) 역시 당시로서는 상업영화가 다루기 힘든 주제였다. 충무로와 다른 시선을 고집하는 입장은 김대현 감독의 '지하생활자'(93년.14분)로도 이어진다.

그와 반대로, 이제는 낯익은 감독들의 패기만만한 출발점을 확인하는 것 역시 흥미롭다. 이정국 감독의 '백일몽'(84년.19분), 양윤호 감독의 '가변차선'(92년.25분), 임순례 감독의 '우중산책'(94년.13분30초), 정지우 감독의 '사로'(94년.4분50초), 김용균 감독의 '그랜드 파더'(95년.12분) 등은 당시 단편영화 자체로 큰 주목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현실에 뿌리를 두면서도 저마다 신선한 감수성을 표현한 점에서 이들 감독의 이후 장편영화와 비교해 볼 만하다. 몇몇 작품에는 이제는 스타급인 배우의 얼굴도 눈에 띈다. 애니메이션 DVD 역시 90년대 이후 활성화된 국내 창작단편을 한눈에 아우르도록 구성돼 있다. 비상업 독립애니메이션의 효시로 꼽히는 이용배 감독의 '와불'(91년.4분30초)을 비롯해 14편의 90년대 단편이 실려 있다.

DVD는 상업극장이 외면하는 동시대 영화가 관객과 만나는 소중한 창이기도 하다. 실제 귀농가족의 일상을 담은 권우정 감독의 다큐'농가일기'(2004년.85분), 엄마와 고모를 통해 미묘한 가족 내 갈등을 포착한 정호현 감독의 다큐'엄마를 찾아서'(2005년.61분)도 나란히 DVD로 나왔다. 각각 인권영화제와 여성영화제에서 호평과 상을 받았던 작품이다.

모두 인터넷(www.indiedb.net)에서 판매중이다. 한국독립영화협회 02-334-3166.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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