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진실 덮을 생각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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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우리 언론사외 가장 혹독한 시련이었던 언론통폐합과 소위 언론인 숙정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느냐, 여전히 묻히느냐의 판가름이 날 것이라는 점에서 22일의 국회 문공위 국정감사는 국민의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지난번에도 문공위는 문공부관계자들을 불러 진상을 추궁했지만 관계자들의 불성실한 답변으로 전혀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제 국정감사도 24일이면 끝나므로 22일의 감사에서마저 진상규명을 못한다면 앞으로 언제 다시 진상을 밝힐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번에는 다행히 통폐합 당시 언론정책에 직접 관여한 「실세」들이 증인으로 나오게 되었다. 이들이 역사와 자기인격을 걸고 모든 의혹을 낱낱이 밝혀주길 기대하면서 우리는 밝혀내야 할 문제의 몇 가지 사항을 짚고자 한다.
우리는 80년의 그 가을을 잊지 않고 있다.
「자율」이라는 이름아래 전국의 11개 신문사, 27개 방송사, 6개 통신사가 문을 닫고, 7백여명의 동료언론인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그날을 우리는 아직도 생생한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 아픔은 특정언론사 언론인의이해차원을 넘어 언론이 짓밟히고 국민의 입과 귀가 억압받은 참사였기 때문에 더욱 크고 깊을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러한 불행이 다시는 내일에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진실은 꼭 밝혀져야 한다. 또 진실이 밝혀져 그것이 부당하고 불법한 것이었다면 그 시정이나 보상책이 거론돼야하며 책임을 누가 어떻게 지느냐는 문제도 차후 논의돼야 한다고 믿는다.
우선 규명돼야할 문제는 언론통폐합과 숙정의 발의는 누가 했으며 그 작업을 어떻게 추진했느냐는 점이다.
최근에 알려진 바를 종합하면 이 같은 언론계 재편구상의 기본 골격은 80년 6월에 발족한 국보위 문공분과위에서 신 군부의 개혁주도 세력에 의해 입안된 것으로 알려졌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이들과 친분이 있는 각분야 인사들이 직접·간접으로 관여했다는 세도 나돌고있다.
지난번 감사에서 이 문제에 대한 문공부측 답변은 당시 신문·방송협회의 이른바 「자율결의」이후 행정적 뒤처리만 맡았을 뿐이지 그 전후 사정은 『잘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율결의나 통폐합의 동의서 서명이 자의가 아니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일이다.
따라서 이번 확인감사와 증언에서는 자율이니, 동의니 하는 당치않은 말이 다시 나와선 안 된다. 그 보다는 어는 언론사를 어디다 붙이고 어느 사는 문을 닫고 하는 구체적인 계획을 누가 어떤 이유로 마련했는가 하는 본질문제를 밝혀야 하며 이른바 숙정 언론인의 선별을 누가 어떤 기분에 따라 했는가를 규명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는 「태평회」라는 단체를 둘러싼 잡음도 가리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은 통폐합 논의에 언론계·학계인사가 참여했다는 항설 때문인데 언론에 종사하는 모든 언론인의 자존심을 위해서도 이번 기회에 숨김없이 밝혀져야 한다. 누가 태평회의 멤버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며 태평회가 어떤 기능을 했느냐는 형식적인 설명도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통폐합의 결단을 내릴 때까지 그 필요성을 긍정하고 부추긴 사람이 누구이며 어떤 논리에 그 정책결단이 영향을 받았는지가 중요하다. 실질적인 자문, 구체적인 실행과정이 진실규명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당연히 이런 점에 감사의 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기대하는 것은 공명정대한 증언이다. 『잘 모르겠다. 유감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비겁하다.
의원들에게 제출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문공부가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신문사의 통폐합 재편, 언론기본법 및 동시행령의 제정시행 등 대 언론정책을 추진했다고 되어있다.
그러나 당시 문공부가 이 일을 주도했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형식적으로는 국보위가 채택하고 실무적 절차를 문공부가 했을 수는 있으나 발의와 결정 그리고 집행은 당시의 다른 실력자들이 한 것이 공지의 일이기 때문에 「모른다」 「협의를 거친 것으로 안다」는 등의 불성실한 답변이 22일의 증인들로부터 나온다면 용인하기 어렵다.
또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당시의 언론풍토로 미루어 그 같은 소신을 갖게됐다」고 한다면 그것은 궤변이 될 것이다. 필요한 정책, 불가피한 조치도 정당성을 지녀야 하는데 몇몇 사람의 「소신」이나, 몇몇 사람이 판단한 「불가피성」으로 합리화될 수는 없다.
통폐합에 직접 관련한 어느 사람은 『언론에 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여러 사람의 자문을 받았다』고 한 적이 있다. 그 여러 사람은 누구이며 자문의 범위는 어떠했고, 그 기능은 공적이었는지, 사적이었는지를 밝혀도 이른바 「소신」과 「상황판단」의 합리성이 설명되기 어려운 판에 독선적인 「불가피론」만 내세운다면 그것은 방자한 궤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언론이 제구실을 못한 것에 대해 매우 부끄럽게 생각한다. 언론이 권력에 편향해서 국민이 알아야할 것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국민을 오도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전면 부인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악조건 아래서도 언론의 기본적인 사명에 충실하고자 나름대로 각고의 노력을 했으며 권력의 중압 아래서도 할 바를 다해보려는 몸부림을 쳤고 그런 나머지 더러 정신적, 육체적 위해에 직면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제 민주화를 향한 길목에서 모든 언론은 새로운 신뢰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자세를 가다듬고 있다.
어둡고 긴 지난 시간을 떨어버리기 위해, 그리고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 스스로의 노력이 1차 적이지만 언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요소의 각별한 관심, 협조도 불가결하다.
그런 점에서 80년 언론사태에 대한 이번 국정감사에서 피감사자와 증인을 포함한 모든 관계당사자들이 진실을 밝히는데 조금도 소홀하거나 주저함이 없기를 거듭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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