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찍지 않았다" 변명했지만…法 "카메라 들이댄 것만으로 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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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몰카 관련 이미지.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중앙포토]

휴대전화 몰카 관련 이미지. 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 없음 [중앙포토]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신체를 향해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는 행위만으로 성폭력특례법상 카메라등이용촬영죄로 처벌받는다는 판결이 나왔다.

사건은 지난해 8월의 한 금요일 밤에 벌어졌다. 소나기가 잠깐 내렸지만 밤에도 더위가 꺾이지 않던 말복날이었다. 자정이 다 된 시간 서울의 한 공동주택 앞을 지나던 피고인 A씨(29)는 그 주택 안에 여성이 혼자 있는 걸 봤다. 담벼락 문을 열고 들어가 1시간 30분을 기다린 끝에 목표로 한 여성이 샤워를 하고 나오는 모습을 포착했다.

A씨는 법정에서 "휴대전화 카메라 확대기능을 이용해 육안 대신 보려고 했고, 사진을 찍으면 불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진을 찍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A씨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0단독 권희 판사는 이런 주장을 받아주지 않았다. 폐쇄회로TV(CCTV)에 담긴 화면을 보면, A씨는 높은 담장 위로 팔을 올려 휴대전화를 창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휴대전화 화면을 통해 피해 여성을 보려고 하는 상황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이를 본 권 판사의 판단이다.

몰카 범죄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은 조형물. 부산 남부경찰서가 해수욕장 화장실에 설치한 것이다. [중앙포토]

몰카 범죄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은 조형물. 부산 남부경찰서가 해수욕장 화장실에 설치한 것이다. [중앙포토]

권 판사는 "A씨가 동영상촬영 시작버튼이나 사진촬영버튼을 누리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피해자를 지켜보다가 촬영대상으로 특정해 휴대전화의 카메라 앱을 열어 화면에 담은 이상 피해자의 신체촬영을 위한 행위의 착수에 나아간 것이다"면서 A씨를 주거침입 및 카메라촬영미수로 처벌하기로 했다.

A씨는 12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성폭력치료강의 40시간 수강명령도 내려졌다. 권 판사는 "피해가 막대하고 다른 사람들도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다"며 "상당 시간 머물며 피해자의 알몸을 훔쳐보고 피해자를 향해 휴대전화 카메라를 들이대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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