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 80% 현실화 땐 보유세 50% 늘어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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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부동산 보유세 개편 속도와 수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여러 세금을 매기는 데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 조정은 그 파급력이 엄청난데도 내용·시행 시점이 불투명해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공시가격 3억~19억원대 아파트 #본지·국민은행 시뮬레이션 해보니 #1주택자도 세금 44~59% 올라 #공시가 개편안 불투명, 시장 혼선

중앙일보가 국민은행 WM 스타자문단의 도움을 받아 공시가격 3억4000만~19억7600만원 아파트 16곳을 대상으로 시뮬레이션한 결과 정부의 보유세 개편안에 더해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을 80%로 올리면(현재 수준을 60%로 가정) 보유세 부담이 지금보다 44~59%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 6억~7억원대 아파트의 경우 보유세가 올해 약 160만~180만원에서 230만~270만원으로 48%가량 증가한다. 더 높은 세율을 적용받는 다주택자의 부담은 이보다 훨씬 크다.

이는 정부가 제시한 대로 종합부동산 세율을 0.1~0.5%포인트 높이고(3주택자 이상은 0.3%포인트 추가 과세) 공정시장가액비율(공시가격의 반영 비율)을 최고 90%까지 올린 것으로 가정한 상황에서 공시가격까지 함께 높아질 경우 상승 효과가 가중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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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교통부는 국토교통분야관행혁신위원회(위원장 김남근)의 권고에 따라 공시가격을 시세에 가깝게 올리는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다. 김 위원장이 개인 의견을 전제로 “시세의 90% 이상을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국토부는 공시가격 인상의 파괴력 때문에 실제 적용에 대해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시가격 현실화 필요성에 이견은 없다”면서도 “다만 언제 얼마를 올릴지에 대해서는 좀 더 논의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공시가격을 만지는 건 종부세 인상과는 함의가 전혀 다르다. 우선 공시가격이 오르면 재산세가 오른다. 고가 주택 보유자가 부담하는 종부세와 달리 재산세는 집을 보유했다면 누구나 낸다. 준조세 성격인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 건강보험료 등의 부담도 함께 증가한다. 여기에 기초생활보장, 장애인연금 등 복지제도의 기준으로도 쓰인다. 최근 몇 년간 땅값이 많이 오른 제주에서는 공시가격 상승으로 기초연금 수급 탈락자가 대거 발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나온 개편안이 다주택자 등 고가 주택 보유자를 타깃으로 한 ‘핀셋 증세’였다면, 공시가격 조정은 사실상 ‘보편적 증세’로 볼 수 있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공시가격 현실화에 대한 신중한 접근 필요성을 제기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최종찬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은 “세금 부담이 늘면서 소비가 줄어들고 고정 수입이 적은 노인층 등의 피해가 예상된다”며 “고용지표 등 곳곳에서 위기 징후가 포착되는 가운데 내수 부진까지 이어지면 장기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공시가격 조정은 중산층·서민을 대상으로 증세하지 않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과 충돌한다”며 “조세 저항이 크기 때문에 실제로 강하게 추진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처럼 부동산 세제는 파급효과의 범위와 강도가 엄청난데도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공시가 현실화는 사실상 보편적 증세 … 강남 집값 못 잡고 비강남 부담 키울 수도

보유세 개편 권고안은 ‘재정개혁특위’, 보유세 개편 확정안은 기획재정부, 공시가격 현실화 권고안은 ‘국토교통부 혁신위’ 등으로 주관 부서·특위별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공시가격의 시세반영률도 언제 얼마만큼 높일지 ‘가이드라인’을 정하지도 않았는데, “시세의 90% 이상 반영” 같은 아이디어 차원의 이야기가 정제되지 않고 흘러나온 것이 대표적인 예다.

부처 간 이견을 조율할 수 있는 기재부의 컨트롤타워 역할도 찾아보기 어렵다. ‘공시 가격과 관련해선 주무부서인 국토부의 결정을 기다리겠다’는 게 기재부의 입장이다. 당장 주택을 구매하려는 실수요층은 자신이 앞으로 내야 할 보유세 부담이 어느 정도 될지 파악도 하지 못한 채 걱정만 하고 있다. ‘정책 난맥’이 부동산 시장의 혼란을 초래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부동산 공시가격 조정, 공정시장가액 상향, 세율 인상이라는 3대 핵심 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정책이 펼쳐져야 한다”며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부처 간 교통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가구 자산의 대부분이 주택에 집중된 한국에서 부동산에 얽힌 세금은 정밀하게 조정해야 한다”며 “주택 시장은 위축이 예상되는데 취득세 등 거래세 인하가 빠진 것이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에서 타깃으로 삼고 있는 ‘강남권’ 집값은 잡지 못하고 비강남권 주택 소유자의 세금 부담만 상대적으로 키우는 역효과도 우려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과 교수는 “강남권(A), 기타 서울 지역과 수도권(B), 지방(C) 등 삼극화가 뚜렷한 상황에서 보유세 부담을 키우면 A와 B 중심으로 똘똘한 한 채에 집중하는 현상이 심해질 것”이라며 “서울·강남권의 선호를 더욱 부각시켜 서울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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