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파병'을 보는 중동의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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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은 13일 프랑스 르 피가로지(紙)와의 회견에서 "유엔 안보리가 평화유지군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이집트는 단 한명의 군인도 이라크에 보낼 수 없다"고 밝혔다.

무바라크 대통령은 "미국 주도의 전후 통치가 종식되고 이라크 자치가 허용되지 않는 한 반미 저항이 계속될 텐데 어떻게 아랍인이 아랍인에게 총을 쏘라고 할 것인가"고 반문했다.

그 다음날 중동 언론들은 무바라크 대통령을 일제히 치켜세웠다. 카타르의 알자지라 위성방송은 "아랍과 이슬람 세계의 입장을 '명확하게' 대변했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후 처리는 중동의 '뜨거운 감자'다. 카타르.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 등 일부 걸프 국가는 미국의 이라크 군사작전을 적극 지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요르단.터키 등은 간접 지원했다.

그러나 다른 이슬람 국가들은 전쟁의 당위성과 미국의 일방주의를 조심스럽게 혹은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국민의 반감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라크 전투병 추가 파병에 대한 이슬람권의 반응은 아직 불분명하다. 그러나 이라크와 팔레스타인 관련 사안은 세계 어느 곳의 일이든 아랍지역 신문의 1면 주요 기사로 등장한다. 따라서 한국의 결정은 이슬람 세계에 민감한 반응을 불러일으킬 게 자명하다.

중동 전문가들의 입장은 엇갈리고 있다. 카이로 아흐람 전략.정치연구소의 자말 술탄 박사는 "전투병 파병은 반한 감정을 극도로 자극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따라서 최소한 유엔의 파병 결의에 따라 행동해야 할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현재의 분열된 이슬람권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과 중동 지역 전체의 외교적 마찰로 발전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극동아시아 전문가인 알사이드 압딘 카이로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한국의 의료 및 공병 지원 부대 파병시 예상 외로 중동의 반응이 민감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일부 과격세력과 대중은 반감을 표시하겠지만 중동 국가들이 외교적으로 문제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심지어 "유엔 결의안이 통과되면 일부 이슬람 국가도 파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사진=바그다드 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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