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 나라에 與黨은 있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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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엄청난 태풍 피해, 미국의 이라크 추가파병 요청, 우리 농업의 사활이 걸린 세계무역기구(WTO)각료회의 여파, 무정부 상태로 치닫는 부안사태 등 정치권이 다루어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

어느 한 문제인들 매듭을 풀기가 쉽지 않아 국가적 위기를 바로 불러올 수 있는 중대 현안들이다. 정치권이 지혜와 역량을 모아도 시원찮을 시국이다. 특히 여당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야 할 중차대한 시점이지만 집권여당은 행방불명 상태다.

민주당 사태가 산 넘어 산의 형세이기 때문이다. 신당파가 20일 탈당키로 하면서 민주당 사태는 가닥을 잡아가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던 것이 일부 신당파가 지역구 민심의 눈치를 보며 주춤거리고, 잔류파는 당권을 둘러싸고 새로운 갈등을 빚고 있다. 신.구주류가 날마다 모여서 세(勢)확장 또는 주도권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책임정치를 뒷받침할 여당은 국정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다.

여당은 정부 정책을 국회에서 뒷받침하는 한편 야당과도 정책을 조율, 현안해결을 위해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할 책무가 있다. 그래야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도 국정운영의 건설적 동반자로서 정부시책에 협조할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 아닌가.

8개월을 넘는 집권당 내부 갈등으로 여야는 물론 정부와 여당, 정부와 야당 간에 의견을 조율할 통로마저 막혀버렸으니 국정운영이 제대로 되기를 어떻게 기대하겠는가.

탈당하든 잔류하든 우리가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그렇지만 여당은 불안정한 정치상황을 하루라도 빨리 정리, 민심수렴과 현안해결에 주력해야 한다.

또 내부 다툼을 벌이더라도 정기국회에서 시급한 국정 현안들의 가닥을 잡고, 민생문제에 힘을 쏟는 모습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노무현 대통령도 어느 당을 여당으로 삼을 것인지 하루 빨리 단안을 내려 정치 불안을 추스르고,국정에 몰두할 여건을 시급히 확보해야 한다. 대통령이 여당사태에 중립을 가장하는 듯한 태도는 정도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