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서구 아랍 소설의 "길잡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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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소설문학의 역사와 전통이 그다지 길지 않은 아랍 문학 세계는 1930∼1940년대에 이르러서야 소설이 하나의 문학 장르로 꽃피우게 된다.
이집트뿐만 아니라 아랍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뛰어난 작가며 올해의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나기브·마흐푸즈」는 1912년 12욀11일 카이로에서 출생했다.
그는 카이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1934년 학위를 받은 뒤 본격적으로 시작한 작품활동을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계속해오고 있다.
1932년 「제임스·베이키」의 소설을 번역해 발표함으로써 작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그는 10권의 단편집과 30여권에 달하는 중·장편소설을 내놓았다. 그가 글을 쓰기 전후의 이집트 상황을 살펴보면 이집트는 1922년 영국으로부터 형식적 독립만을 성취했기에 국민들은 실질적인 주권 독립을 위한 의식을 드높였다.
제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시작된 경제적·문화적 변화속도는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해 가속화됐고 「나기브·마흐푸즈」는 이런 현상들을 기록하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려고 했다.
그는 「나세르」가 혁명 (1952년)을 일으킴으로써 이집트 사회가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렸던 1959년까지 7년 간을 빼놓고는 거의 매년 작품을 내놓았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9∼1944년 사이에 발표된 3권의 낭만주의적 역사소설들은 그 당시 이집트의 정치적·사회적 제반 상황들을 표현했다.
1945년 "새로운 카이로"를 발표하면서 그는 사실주의적 사회소설들을 쓰기 시작한다.
올해 노벨상 작품이 된 "3부작"을 1945∼1952년 사이에 집필한 뒤 1956∼1957년에 걸쳐 출간한다. 이 "3부작"은 사실주의 작품으로 "바이나 알-까쓰라인" "까쓰루 앗-샤우끄" "앗-숫카리아" 등 3편의 소설로 되어있다. 그는 이들 작품으로 1970년 이집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작품상인 국가가을 수상했다. 이 작품은 시대 상황적 배경이나 전개 등이 얼핏 박경리씨의 "토지"를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이 "3부작"은 가족들로부터 존경받는 보수적이며 부유한 회교도 상인과 그의 가족들 삶을 1919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종말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해 그리고 있다. 거의 1천5백 페이지에 달하는 대하 장편소설이다.
"3부작" 각부의 제목은 주인공이 살고 있는 거리 또는 지역의 이름이다.
1959년 7년 동안의 침묵을 깨고 이집트 최대 일 간지 인 알-아흐람에 "우리동네의 아이들"을 연재 소설로 게재했으나 그 당시 정치적 상황으로 빛을 보지 못했다.
1959년 이후에 발표된 "도둑과 개들" (61), "메추라기와 가을" (62), "거지" (65), "나일강에서의 잡담" (66), "미라마르" (67), "마라야" (72), "빗속의 사랑" (73) 등의 작품에서는 초기작품의 특징들이 사라진다. 즉 유머스럽고 드라마틱한 장면들, 그리고 다채로운 주인공과 위트는 사라지고 절망적이고 우울한 분위기가 압도적이 되며 철학적이면서 조용해진다.
「마흐푸즈」는 작품들 속에서 그 시대 이집트인들의 전형을 창조해냈다. 소설의 등장 인물들은 한 개인을 대표하지 않고 사회계층의 특징을 짓는 모델로서 그 계층의 사상과 가치를 표현하고있다.
사회 부조리를 드러낼 때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등장 인물들에게 해학과 기지를 불러 넣는 점이 그의 뛰어난 수법 가운데 하나다. 그는 이집트 사회의 인물들과 만연해 있던 부패·부조리, 그리고 거기서 빚어지는 갈등을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묘사하는데 성공한다. 이와 같은 표현의 우수성·기지·뛰어난 상상력으로 그는 이 시기에 이미 가장 탁월한 작가중 한사람으로 위치를 굳힌다.
1952년 이후 작품에서는 작가는 전만큼 주제에 대해 분명히 설명하지 않는다. 대화나 이야기가 서술에 집착하지 않고 암시적이며 함축적인, 그리고 예술적이면서 상징적인 분위기로 은밀히 표현한다.
서술만을 통해 사건을 연결하지 않고 암시와 상징수법, 자유연상 플래시백의 기법을 이용해 사건경과나 그 결과를 전개한다. 그리고 집약적 의미와 함축적 언어로 인간의 근본적 문제점들을 다룬다.
「마흐푸즈」는 서구인들의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독특한 아랍적 색채를 지니고 현대 아랍 소설을 오늘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냈으며 20세기 초까지 감추어져 있던 회교 윤리적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세계 각 국 독자들에게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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