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치원의토론이야기] 질문 리스트 만들고 순서 정해 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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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깨고 병아리가 나올 때쯤 어미닭이 달걀 껍데기를 부리로 콕콕 쪼아 주던 모습이 기억에 새롭다. 병아리로 하여금 세상 밖으로 나오기 쉽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어미닭은 교육(educate)의 본래 의미가 '밖으로 끌어내는' 데 있음을 연상케 한다. 이에 걸맞은 질문이 있다. 사고와 질문을 끌어내기 위한 유발질문은 사실조사를 위해 던지는 유도질문 (leading question) 과는 다르다. 예컨대 "너 담배, 언제 끊었지?"라는 질문에 "어저께요"라고 대답한다면, 그는 자신이 담배를 피웠던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이것은 유도질문의 예다.

자녀들의 사고와 질문을 잘 끌어내기 위해서는 ①큰 질문(거시 대주제)을 작은 질문 (미시 소주제)으로 쪼갤 줄 알아야 한다. 큰 질문은 대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음식도 통째로 보다는 잘게 썰어 요리할 때 양념이 잘 스며든다. 마찬가지로 큰 질문을 작은 질문으로 쪼개면 생각이 잘 스며든다. ②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내용을 끄집어내기 위해서는 깊은 질문이 아니라 얕은 질문부터 단계적으로 던져야 한다. 특히 입이 무거운 사람과 대화할 때는 더 더욱 그렇게 해야 한다.

③폐쇄형 질문 (정답이 하나)은 처음 만나는 상대라 하더라도 혹은 서먹한 분위기에도 대답하기가 수월하고, 또 명확한 결론을 낼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다. 반면 심문.신문의 방식과 같아 대화의 폭이 좁아진다. 또 개방형 질문 (정답이 아예 없음)은 대화의 폭을 넓히고 분위기를 자유롭게 만드는 장점이 있는 반면 막연한 질문이기에 대답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진전된 경우라면 ④불완전문장의 질문은 완전문장의 질문에 비해 정확한 대답을 위한 부담감이 적어 좋다. 예컨대 "EEZ의 기점을 독도로 선언하면 불리해진다는 정부의 견해에 논리적 모순은 없습니까?"는 완전문장의 질문이지만 불완전문장의 질문은 "EEZ의 기점을 독도로 선언하면 불리해진다는 정부의…?"다. 이때 말끝은 마무리하지 않는 대신 어조는 분명히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전체를 향해 "질문 (의견)이 있으신 분, 계신가요?"라고 묻는 것을 ⓐ전체질문이라 한다. 웬만한 경우 전체질문에서 자신 있게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때 전체를 몇 개의 소집단으로 나눠 질문한다. 예컨대 "여러분 가운데 부산 (광주)에서 올라오신 분 없으신가요?"라고 물으면 손을 드는 사람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을 ⓑ소집단질문이라 한다. 하지만 이래도 반응이 없다면 특정 개인의 이름을 거명하며 ⓒ지명질문을 던질 수 있다. 지명을 받고나서야 비로소 좋은 의견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토론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기에 앞서 질문 리스트를 작성한 뒤 순서를 정해 둔다. 그래야 상황에 맞는 질문을 순발력 있게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강치원 원탁토론아카데미 원장.강원대 교수 (wontak21.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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