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주부 3명 체험놀이 사이트 개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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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날로 팽창하는 어린이 교재.교구 시장과 그 교구 활용을 위해 형성되고 있는 거대한 유아 과외시장. 그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생활 속의 놀이를 보급하기 위한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했다.

각각 3~6세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길상효(33.서울 서대문구 현저동).김영해(40.경기도 의정부시 가릉동).김지연(34.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씨가 그 주인공.

이들은 아이를 낳은 후 각각 '깐돌엄마''몽치엄마''태현엄마'라는 대화명을 사용하며 여러 인터넷 육아 사이트의 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이들은 조기영어교육이나 값비싼 가베교육.영재교육 대신 모래.찰흙.전래놀이 등의 체험놀이를 통해 아이와 행복하게 즐길 수 있는 놀이정보를 공유하는 사이트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김영해씨는 "민들레 홀씨 불기, 당근 자른 단면 들여다보기, 두루마리 휴지를 물에 풀어 반죽하기 등 아이와 함께하며 즐겁게 지낸 경험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동기를 말했다.

그는 또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든 교육 프로그램이 아닌 엄마들이 생활 속에서 찾아낸 교육놀이로 사이트를 채워나갈 것 "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길씨와 김지연씨의 대학전공이 각각 세라믹공학.미생물학이어서 과학놀이를 강조하기로 했다. 수학을 전공한 나정흠(40.학원 강사)씨를 수학놀이의 이론을 보강할 조언자로 초빙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사이트가 지난 6월 문을 연 '아하네(ahane.net)'.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사무실을 임대하는 비용 1천2백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각기 비상금을 털고 생활비를 쪼갰다.처음엔 수익을 위해 쇼핑몰 코너도 만들까 고민도 했었지만 생활 속에서 교육소재를 찾는다는 기본 취지에 어긋날 것 같아 제외했다.

아하네에는 과학놀이.놀이수학.아하놀이 코너 등 엄마들의 생생한 교육체험담을 나누는 장(場)이 마련돼 있다."하얀색 소국을 파란색 잉크물에 담가뒀는데도 꽃잎 색이 변하지 않아 낭패"라는 실패담에는 "소국 대신 안개꽃을 사용하고 잉크물도 진하게 만들어라"는 조언이 뒤따른다.

또 대학졸업 후 영어회화 학원 강사를 지낸 길씨가 아하네에 실린 놀이를 영어로 진행할 수 있도록 대사를 적어놓은 유아영어 코너도 인기다.

아하네에는 장애를 가진 세살배기 딸을 키우고 있는 김지연씨가 자신의 아픈 경험을 솔직하게 싣고 있는 '조금 느리게 크는 아이'라는 색다른 코너도 있다.

김씨는 "아이가 15개월까지 목을 가누지 못해 병원을 전전하며 당황했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준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만난 장애아 부모들이었다"며 "나도 받은 도움을 나눠준다는 생각으로 생생한 체험정보를 올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아하네는 아직 회원수가 1천3백여명으로 걸음마 단계지만 운영자들의 생활은 크게 달라졌다. 전업주부인 이들이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들이 잠든 이후.

보통 오후 10시에 일을 시작해 새벽 3~4시를 넘기기 일쑤다. "돈도 안 되는 일에 매달린다고 남편이 싫어한다"는 길씨는 "그래도 작업을 할 때마다 나도 신세대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안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지영 기자<jylee@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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