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속조치를 기다린다-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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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태우 대통령이 4일 국회에 직접 나가 한 국정연설을 보면 정부의 시정기조가 지난 7개월과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짐작된다. 노 대통령은 통일문제와 북방 외교에 강한 열의와 자신감을 보이고 지금까지와는 달리 폭력과 반체제에 대해서는 강력한 공권력의 행사를 다짐했다.
그러나 국내정치나 경제정책에 관해서는 대부분 종전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6공화국 출범 후 지난 7개월이 대부분 5공 뒤치다꺼리와 올림픽 준비로 바빴고 그에 따라 노 정부의 진정한 국정청사진은 올림픽 후에 나올 것으로 많은 사람들은 기대해 왔다. 더우기 지금까지 시정연설을 총리가 대독해온 관례와는 달리 대통령이 직접 연설을 하기로 했다는 점과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끝낸 직후라는 점에서 연설내용에 대한 기대는 높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연설은 전반적으로 보아 이런 기대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당면한 최대 현안인 5공 청산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은 올림픽이 끝나고 나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과감한 단안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는 이 문제에 관한 집권 측의 자세에 대해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취해 왔으나 이번 연설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진전된 입장 표명이 없다.

<5공 청산의지 미흡>
5공 청산의지 미흡 또 민주화 개혁추진에 있어서도 보다 적극적인 의지표명이 나왔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노 대통령은 현행 각종 법률이 6·29선언 후 여야 합의에 의해 개정된 것이고 국민의 뜻에 어긋나는 법률은 고칠 수 있다고 했지만 민주화를 표방한 6공화국 들어 7개월이 넘도록 수많은 각종 비민주적인 악법이 여전히 살아있고 대부분 과거 권위주의 통치 아래 그런 법과 제도들을 운영하던 사람들에 의해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제도와 사람에 대한 과감한 개혁과 개편이 시급히 있어야 하고 이번 연설에서는 그런 의지 표명이 기대됐었다.
또 하나의 당면 현안인 구속자 석방문제에 있어서도 정부는 종래의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올림픽의 성공으로 모처럼 조성된 국민적 일체감을 생각하더라도 계속 관료적 합리주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어 정쟁요인을 남긴다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고 생각된다.
복지문제에 있어서도 미흡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0년간의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인해 계층간 위화감이 심각하고 소외계층의 불만이 심화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공정한 소득분배에 관한 보다 과감한 정책 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다. 더우기 이런 현상으로 인해 최근 이념논쟁이 가열되고 있음을 볼 때 정부가 기존의 정책기조에 집착하고 있음은 우려할 만 하다.

<주목되는 통일 방안>
주목되는 통일방안 통일 문제에 있어서는 북한측이 좋다면 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 할 것이며 배한 김일성 주석이 언급한 부가침 선언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한 대목이 주목된다. 이런 발언은 7·7 선언을 위시한 우리 정부의 기존 통일정책에 다 포함돼 있는 내용이지만 북측의 통일방안 중에서도 도움이 되는 부분은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대목과 곧 새 공화국의 통일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언급과 관련해 본다면 정부가 모종의 과감한 통일방안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여 주목하게 된다.
통일문제에 관해서는 오랜 냉전시대의 고정관념을 빨려 벗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급한 업적 주의적 추진도, 곤란하다고 보며, 어디까지나 국민적 합의기반 위에서의 추진이 돼야 할 것이다. 같은 논리로 대 공산권 외교도 가시적인 실적 올리기에 급급하다가 경제적 손실을 감수하게 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대통령이 연설에서 뚜렷이 밝히지 않은 내정문제에 관해서는 정부·여당이 정국운영과정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줄 것으로 기대하며, 대통령 연설에서 미흡한 인상을 준 민주화 개혁의 속도나 5공 청산 조치 등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후속 적인 조치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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