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녁의 눈에 눈동자로 살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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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활> 최승호<시인>
1
화살 맞은
과녁들의 눈이
피를 흘리는 것은
이 땅에 큰 슬픔이
부르르 떨고 있기 때문이다
넘어지는 과녁이었던 사람들
아물지 않고
벌어져 있는 구멍들을 안은 채
부러진 과녁으로 버티는
이 나라에
몽고
일본
중국
소련
그리고 미국의
활꾼들이 와서 힘차게 활을 당긴다
심난하다
2
과녁의 눈을 꿰뚫으려는
집중된
집중된
눈동자들,
벌판이지만 벌판을 잊어버리고
활꾼이라는 생각도 잊어버리고
오직 과녁의
눈에 눈동자를 꽂으려는
벌판에서 심난과 싸우는 자들,
욕심은 화살을 마구 떨게 한다
활꾼 중의 으뜸은
무욕의 활꾼,
활꾼 중의 강자는
자신을 과녁으로 세우는 자,
잘 박힌 화살 하나가
과녁의 눈에 눈동자로 살아
바람 부는 빈 벌판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
넓다
3
벌판의 풀밭
가을 바람 속을 날아가는
빨간 잠자리,
다투어 날아가는 화살떼 속에서도
평화롭다
너는 우주 안을 마음대로 활개치는
몸 전체가 자유로운 활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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