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안 만나고 삼지연 간 김정은 … ‘체제보장’ 메시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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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 양강도 삼지연군을 방문해 감자농장을 둘러보고 시찰했다고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이 양강도 삼지연군을 방문해 감자농장을 둘러보고 시찰했다고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백두산 인근 삼지연을 찾아 현지지도를 했다고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 매체들이 10일 보도했다.  지난 2일 보도 이후 8일 만이다. 북한 매체들이 정확한 시점을 거론하진 않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6~7일), 조명균 통일부 장관(3~6일)이 연이어 평양을 찾았던 시기와 맞물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북, 8일 만에 현지지도 모습 공개 #혁명성지 방문, 정통성 인정 압박 #감자농장 시찰, 봇나무 식목 강조 #민생 살피는 지도자 면모도 과시

김 위원장은 기대와 달리 한·미 장관들을 만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의도적으로 이들을 만나지 않고 평양에서 북으로 636㎞나 떨어진 삼지연을 찾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6·12 북·미 회담 후 비핵화 협상이 속도를 내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이런 행보는 북·미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호락호락 수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의 방문지가 삼지연이라는 점도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중요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 삼지연을 찾곤 했다. 지난해 12월 삼지연을 찾았을 땐 백두산 천지에 오르고 올해 1월 1일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다. 앞선 2013년엔 측근들과 함께 삼지연을 다녀온 뒤 고모부인 장성택 당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했다.

삼지연은 김정은 체제의 정통성을 뒷받침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평양 아닌 원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막내아들로 태어난 그는 자신이 김일성·김정일에 이은 ‘백두혈통’임을 강조하기 위해 삼지연을 자신의 이미지에 투영시켜 왔다. 이를 위해 2016년엔 3~4년 안에 삼지연을 ‘혁명의 성지’로 만들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백두산 천지지구’ 등 건설현장을 시찰했다고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이 북한 매체에서 공개된 것은 지난 2일 평안북도 신의주 일대의 생산현장과 군부대 시찰 보도 후 8일 만이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백두산 천지지구’ 등 건설현장을 시찰했다고 10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이 북한 매체에서 공개된 것은 지난 2일 평안북도 신의주 일대의 생산현장과 군부대 시찰 보도 후 8일 만이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통일부 당국자는 10일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이 올해 신년사에서도 주요 건설사업 중 하나로 삼지연군 꾸리기를 언급했다”며 “이번 공개활동도 (이런 맥락과) 관련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단순한 현지지도가 아니라 정치적 함의를 담은 방문으로, 미국에 자신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체제를 확실히 보장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이 이번 방문에서) 가장 관심했던(관심을 기울였던) 문제는 감자 재배에 주력하는 중흥농장”이라고 전했다. 김 위원장은 이 농장에서 “삼지연군을 감자농사의 본보기 단위로, 농촌의 종합적 기계화를 실현한 단위로 꾸릴 것”을 주문했다. 노동신문은 또 “(김 위원장이) ‘감자가루(녹말) 생산공장도 시찰했다”고 덧붙였다. 주민의 먹거리를 살피는 민생 지도자의 모습을 과시한 것이다.

이 밖에도 김 위원장은 이번 삼지연 방문에서 ‘봇나무(자작나무)’를 심을 것을 지시하면서 ‘생태 환경 보존’도 강조했다. “삼지연군 원림녹화 설계를 잘해야 한다”며 김정일 위원장이 좋아했다는 자작나무를 심으라고 주문했다. 이는 남측과 진행하고 있는 산림 분야 협력을 위한 분과회담을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있다. 생태 환경 보존을 중시하는 한편, 동시에 남측과의 산림녹화 사업을 효과적으로 펼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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