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곰 고난도 재주로 "금 사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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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육상과 함께 하계올림픽의 3대 이벤트로 불리는 수영과 체조경기가 주요일정을 끝냈다.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수중발레)과 리듬체조가 남았지만 이 부문은 올림픽에서 채택된 것이 LA대회 때부터로 아직은 개척단계다. 한국이 여전히 배척된 가운데 경영과 기계체조가 서울올림픽에서 어떤 양상으로 전개되었는지 정리해본다.
서울올림픽의 육상경기장과 수영장이 미국·소련·동독이 경쟁적으로 금메달을 낚아 가는 공동어획구역이라면 체조경기장은 확실한 소련만의 단독 어로구역 이었다.
소련은 14개의 금메달이 걸린 기계체조에서 10개의 금메달을 휩쓸어버린 것이다.
소련은 지난 52년 헬싱키올림픽에 첫 등장, 남녀체조단체전을 석권한 이래 남자는 56년 멜버른대회까지 2연패 후 64년부터 76년까지 일본에 5연패를 허용했으나 여자는 80년 모스크바대회까지 단 한차례도 거르지 않고 우승을 독점, 올림픽 9연패라는 무지막지한(?)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소련은 이번 서울올림픽 남녀단체전 석권으로 불참한 84년 LA대회를 제외한다면 여자는 10연패, 남자는 80년 대회에서 정상에 복귀한 후 2연패, 대회통산 4연패를 기록했다.
개인전에 있어서도 소련의 철옹성은 좀처럼 흔들림이 없었다.
「블라디미르·아르테모프」가 단체전에 이어 개인종합·평행봉·철봉을 휩쓸어 4관왕에 올랐는가하면 여자부에선「옐레나·슈슈노바」가 단체전에 이어 개인종합을 석권했고「스베틀라나·보긴스카야」가 뜀틀 종목을 추가, 10개의 금메달을 만들어냈다.
올라운드 플레이어라 불리는 개인종합경기에서 이번 서울올림픽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불과 11개월 전에 열렸던 87로테르담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개인종합 3위를 마크했던 남자부의「아르테모프」(소련)와 여자부의「다니엘라 실리바스」(루마니아)가 각각 나란히 정상으로 뛰어올랐다는 점이다.
「아르테모프」는 같은 팀 동료인「디미트리·빌로제르체프」「유리·코롤레프」에게 금·은을 허용했던 동메달리스트였고「실리바스」역시 팀 동료인「아우렐리아·도브레」와「슈슈노바」에 이은 3위 선수였다.
국가별로 본다면 남자부에선 2위팀 중국이 4위로 처진 반면 3, 4위 팀인 동독과 일본이 2, 3위를 차지했고 여자부에선 우승팀 루마니아가 소련에 정상을 내줬고 6위 팀 미국이 동독에 이어 4위로 뛰어 오른게 특기할만하다.
미국의 경우 코칭스태프의 실수로 팀 감점을 당하지 않았다면 동메달이 확실한 상황이었다.
국가별로 순위가 뒤바뀌는 현상에 대해 대한체조협회 정봉순 이사는 불과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기는 하지만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2진급 선수들이 새로운 기술들을 남몰래 익혀 이번 올림픽무대에서 처음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물론 이 신기술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고난도의 연기를 절묘하게 연결시킨 복합고난도인 까닭에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예를 들어「실리바스」가 단체전 사유연기에서 단 한차례 시도한 몸 비틀기 2회와 공중돌기 2회를 복합시킨 연기라든가, 입상권에는 들지 못했지만 불가리아의「델리아나·보디니찰로바」가 선보인 몸 펴서 공중돌기2회, 3회 몸 비틀어 1백80도 돌기 같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개중에는 평균대 도입부에서 몸 비틀어 두손 짚고 뒤로 공중돌기 2회 도중 한 손으로 물구나무선 채 정지했다가 곧바로 허리대기로 연결하는 사상 초유의 연기를 하다가 부상으로 중도 포기한 소련의「올가·스트라예바」같은 경우도 있었다.
뒤에 흐르는 물이 앞강물을 밀어내듯 이런 신예들이 등장한 반면 그동안 확실한 금메달후보로 알려졌던 노장들의 쇠퇴 현상도 두드러졌다.
소련의「빌로제르체프」는 철봉에서 손을 놓치는 등 주종목인 철봉과 평행봉에서 연거푸 실수를 연발, 노쇠한 모습을 보였고 중국의「리닝」은 종목마다 실패를 거듭,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 마저 자아낼 정도였다.
나중에 확인된 사실이나 중국남자의 경우 주전 6명중 절반인「리닝」「러우윈」「쉬즈창」등 3명은 서울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이미 결정한 선수들이었다.
또 루마니아의 여자금메달후보였던「도브레」는 왼쪽무릎 붕대를 풀고 포디움에 올라선 대회 최종일 약15㎝ 가량의 수술자국을 드러내 그동안 나돌았던 부상설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서울올림픽을「이변올림픽」이라고 부르기엔 무리가 따른다.
「이변」이라기 보다는 세대교체의 과정이 올림픽무대를 통해 이뤄지고 있음을 눈으로 볼 수 있었다는 것뿐이다.
아무튼 이번 올림픽을 통해 한국은 또 한번 세계무대라는 두터운 벽을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유일하게도 박종훈(24·수원시청)이 한국체조 사상 처음으로, 그리고 한국이 올림픽에 출전한지 28년만에 동메달(뜀틀)을 따내기는 했지만 대회를 불과 15일 앞두고 발바닥에 부상을 한 김은미(l6·서울체고)를 대신할 선수가 없었던 절박한 저변환경이 원망스러웠을 뿐이다.
그밖에도 올림픽을 앞두고 친선대회라는 이름으로 내한, 경기장 규모·조명상태·사용기구, 심지어 관중들의 성격까지를 사전에 파악,「한국인들이 기념촬영·사인을 요구하면 가능한 친절히 응하라」는 내부지침을 마련할 정도로 치밀한 경기력 외적 능력을 과시한 소련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김인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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