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 발레리나 김주원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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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김주원(28.사진)씨는 27일 귀국하자마자 대구로 내려갔다. 29일 대구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될 국립발레단 '돈키호테'의 마지막 연습에 합류하기 위해서였다. 대구로 내려가는 KTX 안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는 아이와 부모, 그리고 발레 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떻게 발레리나가 됐나.

"1남3녀 중 셋째로 언니와 오빠가 있다. 언니, 오빠가 하는 것들은 몽땅 다 따라했다. 피아노.바이올린.성악, 심지어 태권도장까지 다녔다. 그 가운데 발레는 조금 특별했다. 지겨워할 때쯤이면 다른 작품에 들어가 늘 새롭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부산 배정초등학교 5학년 2학기 때부터 본격적으로 발레를 배웠다."

-체형은 어떻게 만들었나.

"기본적으론 타고난다. 그런데 난 선천적으로 발이 못생겼다. 발레리나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발등이 앞으로 나와 아치형을 그리는 모양새를 못 낸다. 골반도 너무 작아 터닝할 때 안정적이지 못했다. 나름대로 연구하고 연습하면서 약점을 보완했다. 그 과정이 중요하다."

-유학은 어떻게 갔나.

"1992년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내한 공연 당시 열흘간 특강이 있었다. 그때 강의를 맡았던 쿠즈네초바 선생이 날 예쁘게 보고 유학을 제안했다. 볼쇼이는 꿈이었다. 다음해 선화예중 3학년 때 러시아로 갔다. 볼쇼이 수석무용수 출신 스승 마린나 레오노바는 내가 서정적인 부분에 강점이 있다면서 그 부분을 키우라고 했다. 처음 수업할 때 가장 가장자리에서 연습하다 조금씩 가운데로 자리를 옮겨 갔고, 결국 2년 뒤엔 첫 번째 그룹에 설 수 있었다."

-러시아어를 배우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볼쇼이에서는 발레만 가르치지 않는다. 실기가 반, 이론이 반이다. 발레가 과학적인 예술이라면서 수학 수업을 해야 했다.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며 문학을 배웠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희곡 수업은 고역이었다. 고어가 많아 사전을 찾아도 단어가 없었다. 수업은 생각을 키워주는 방향의 문답식으로 진행됐다. 교과서를 달달 외워 수업에 들어가 기계처럼 대답했다. 선생님도 질리시다는 듯 날 쳐다봤다."

-유학 중 힘들었던 점은.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모스크바에 건너가 2년쯤 지나 새벽에 위경련 때문에 목욕탕에서 쓰러졌다. 앞니가 부러지고 턱이 깨지고 타일의 뾰족한 데 찍혀 허벅지도 까졌다. 3시간쯤 지나 선배 언니가 발견해 응급실로 옮겼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죽었을 거라고 했다. 아플 때가 가장 서럽다.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

-훌륭한 발레리나가 되려면.

"테크닉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동작을 하는지 자기 자신이 확신을 갖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동작은 그 사고에 맞춰 다 아름답게 나온다. 결점에도 불구하고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 몸에 맞는 라인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ce .춤의 영예)='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세계적 권위의 상이다. 발레의 개혁자로 평가되는 장 조르주 노베르(1727~1810)를 기리기 위해 국제무용협회 러시아 본부가 1991년 만들었다. 김주원은 25일 러시아 모스크바 볼쇼이 극장에서 열린 제14회 시상식에서 최고 여성 무용수상을 받았다. 한국인으로 강수진(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99년 수상자)에 이어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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