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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중국행을 택한 기업·기술자를 탓할 수 있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중국 화웨이가 지난 3월 출시한 스마트폰인 ‘P20프로’엔 세계 최초로 ‘트리플 카메라’(후면)가 탑재됐다. 비슷한 시기에 출시한 삼성전자의 ‘갤럭시S9’은 총점에선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받았지만, 카메라 부문에선 P20프로에 밀렸다.

‘싼 가격 대비 쓸만하다’는 이미지의 중국 스마트폰이 세계 1위 업체의 프리미엄 스마트폰보다 카메라 성능이 낫다는 평을 받았다. 가볍게 넘길 일은 아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더 씁쓸해진다. 이 기술을 한국의 중소업체가 개발했다. 이 업체는 왜 중국으로 갔을까. 국내에서 투자를 받지 못해서다. 고심 끝에 찾아간 화웨이는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를 내밀었다. 이렇게 세계 최초 트리플 카메라는 중국 브랜드를 달고 출시됐다.

최현주 산업부 기자

최현주 산업부 기자

한국이 '세계 최고'인 분야는 많지 않다. 반도체·스마트폰·디스플레이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런데 이들 분야의 인재와 업체가 요즘 줄줄이 중국행이다. 반도체의 경우 업계 종사자에겐 현재 받는 연봉의 5배 이상을, 업체엔 공장설립‧연구개발비 등 모든 자금 지원을 제안한다. 더구나 세계에서 가장 큰 소비시장인 데다 성장 가능성도 크다.

하지만 단지 이것뿐일까. 중국은 합작을 제안하면서 51대 49의 지분을 조건을 단다. 언제든지 경영권을 빼앗길 수 있는 구조다. 높은 연봉을 제안하지만 근로계약을 5년 단위로 한다. 그마저도 채우지 못하고 해고당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무엇보다 낯선 곳으로 삶의 기반을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들이 중국행을 선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 산업 생태계에 있다. 지난달 27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상하이 2018’에 참여한 67곳의 국내 중소기업(스타트업) 중에서도 중국 투자를 받은 곳이 적지 않았다. 2곳은 이미 중국업체와 합병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 업체의 공통점은 국내에서 투자 유치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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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기술 보는 안목이 없고 투자에 인색해서가 아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엔 벤처투자시스템이 잘 갖춰졌다. 시스템에 아이디어만 올려도 투자자를 모을 수 있다. 국내에선 이미 개발한 기술을 들고 이 업체, 저 업체 찾아다녀야 한다. 효율성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

중국행을 택했다고 매국노라 욕할 수 있을까.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기술자에게 대의와 의리를 좇아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는 인재·업체가 뜻을 펼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먼저다. 대기업 개혁도 좋지만, 기초 체력부터 다져야 중국의 맹추격도 견딜 수 있다.
최현주 산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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