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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축구대표팀에 계란을 던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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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지한
김지한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지한 스포츠팀 기자

김지한 스포츠팀 기자

“한국 축구팀이 귀국하는 자리에 계란이 날아들었다고? 그렇다면 독일은 벽돌을 던져야 하나.”

독일의 한 축구 팬이 독일 축구전문지 ‘키커’의 기사에 단 댓글이다. 키커는 “러시아 월드컵을 마친 뒤 귀국한 한국 대표팀의 해단식 현장에 일부 팬이 계란을 던졌다. 계란에 직접 맞은 선수는 없었지만 몇몇 선수는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국은 지난달 28일 러시아 월드컵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 독일을 2-0으로 꺾었다. 그런데도 한국의 축구 팬이 귀국한 선수들을 향해 계란을 던졌다는 소식을 접한 독일 팬들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벌어져야 할 상황 아닌가”라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기력한 경기 끝에 한국에 진 독일 대표팀은 어떻게 됐을까. 지난달 29일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엔 라인하르트 그린델 독일축구협회 회장과 요아힘 뢰브 독일대표팀 감독, 주장 마누엘 노이어가 침통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80년 만에 월드컵 조별리그를 탈락했지만, 선수들의 귀국 현장 분위기는 차분하고 담담했다. 선수들을 향해 계란이나 물건을 던지는 행동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지난달 29일 인천공항에서 열린 한국 축구대표팀 해단식 현장에 일부 팬이 던진 계란.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인천공항에서 열린 한국 축구대표팀 해단식 현장에 일부 팬이 던진 계란. [연합뉴스]

4년 전 축구대표팀이 브라질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실패하고 귀국했을 때는 일부 팬들이 엿을 던졌다. 당시엔 무기력한 경기를 펼쳤던 축구대표팀을 향한 팬들의 분노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해프닝으로 여기고 넘어갔다.

그러나 러시아 월드컵에서 사력을 다해 뛴 끝에 값진 승리를 거두고 돌아온 선수들에게 계란을 던지는 행위는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독일과 3차전에서 우리 선수들은 무려 118㎞를 달렸다. 월드컵 조별리그 48경기를 통틀어 가장 많이 뛴 기록이다.

물론 1·2차전에서 패배한 끝에 16강 진출에 실패한 데 대한 팬들의 실망과 분노는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 대표팀 선수들을 향해 계란까지 던져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이대로 돌아갈 순 없었다”면서 그라운드에서 사력을 다한 태극전사들에게 박수를 보내긴커녕 계란 투척이 웬 말인가.

월드컵 본선에 처음 출전했던 파나마는 3전 전패로 탈락했지만 수도 파나마시티엔 대회를 마치고 돌아온 선수들을 위한 카퍼레이드까지 열렸다. 팬들의 매너는 그 나라의 축구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월드컵이 끝나면 항상 4년 뒤를 기약한다. 축구대표팀의 전력 강화도 중요하지만, 4년 뒤엔 팬들의 성숙해진 태도를 보고 싶다.

김지한 스포츠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