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 NGO] 정치 참여, 중립성이 성공 열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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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시민단체의 '정치 행보'가 부산하다. 내년 4월로 예정된 17대 총선이 7개월 앞으로 다가오면서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낙선운동'으로 정치권에 태풍을 몰고 왔던 시민운동 진영. 그들이 이번에는 보다 업그레이드된 정치개혁 운동을 벌이기 위해 역량을 모으고 있다.

흐름의 방향은 실질적인 제도 개선과 현실정치 참여의 두 갈래다.

낙선운동이란 방식이 어느 정도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다음 총선에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인식에서다.

무능.부패정치인 청산이란 구호에 유권자들이 호응, 낙선대상 86명 중 59명(68.6%)을 떨어뜨리는 성과를 거뒀다는 자평도 있지만 실정법을 벗어난 시민운동이란 비판도 많았다. 상당수 관계자가 재판에 회부돼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16대 국회의 의정활동상이 구태의연하다는 점에서 "도대체 낙선운동이 실질적으로 거둔 게 뭐냐"는 비판에 직면한 것이다.

결국 법과 제도의 개혁이 없는 단순한 인적교체만으론 정치개혁이 요원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여기에서 주류 시민단체들이 선거법.정치자금법.정당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에 발벗고 나섰다.

대표적인 단체가 경실련.한국YWCA.흥사단 등 55개 시민단체가 참여하고 있는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 이들은 지난 8일 '(가칭)범국민정치개혁 연대체'구성을 시민운동 진영에 제안했다.

정치자금 단일 계좌 사용, 고액기부자 실명 공개, 지구당 대표와 공직후보자 분리, 1인2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핵심 과제로 정치개혁 여론 형성에 함께 나서자는 것이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정책실장은 "반부패 정치개혁은 국민 모두의 요구이기 때문에 입장과 차이,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동참할 수 있는 한시적 연대조직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선협은 연대체를 통해 국회에 범국민정치개혁특별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국회 내 정치개혁입법 논의를 모니터링하면서 의원 개개인에 대한 압박활동을 펼 계획이다. 대규모 국회 앞 집회도 준비하고 있다.

참여연대.한국YWCA.함께하는 시민행동 등 46개 단체가 모여 지난 2월 출범한 정치개혁연대도 정치자금 제도개선을 촉구하는 온.오프 전국 서명을 벌이고 있다. 최근 정대철(鄭大哲)민주당 대표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파문이 계기가 됐다.

그동안 시민운동의 방식을 놓고 노선 분화의 길을 걸어왔던 공선협과 정치개혁연대가 손잡고 정치개혁법안 통과를 위해 감시.압력활동에 나선다면 정치권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정치관계법 개정안은 현재 중앙선관위에 의해 지난달 27일 국회에 제출된 상태로 시민단체들은 이번 정기국회 중 역량을 결집해 정치개혁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다.

이와는 별도로 최근 시민단체 인사들이 직접 현실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흐름도 생겨났다.

최열(崔冽)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가 중심이 된 '정치개혁과 새로운 정치주체 형성을 촉구하는 시민사회 1천인 선언'그룹이다.

崔대표는 "국민이 기대하는 합리적 개혁정당은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사람과 각계 전문가들이 중심에 서고 오염된 정치권에서 깨끗하고 개혁적인 의정활동을 한 정치인이 합류할 때만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로 환경과 여성운동단체가 이 같은 입장에 서 있다.

상지대 정대화(鄭大和)교수가 준비 중인 시민정치네트워크(가칭)도 비슷한 성격이다. 정치권은 자정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시민단체 인사가 주축이 돼 새로운 '시민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물론 이 같은 시민단체의 정치참여론을 시민운동 진영의 대세로 보긴 어렵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권력 감시가 목표인 단체가 어떻게 권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갈 수 있겠느냐"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崔대표가 정치개혁연대의 핵심 멤버였기 때문에 혼선을 유발하는 측면이 있어 보다 분명한 입장 조율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실련은 공식적으로 "정치개혁 운동은 무엇보다 정치적 중립성이 전제되지 않으면 곡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시민운동의 정치참여' 논의와 관련된 단체나 인사들과는 분리해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섣부른 시민단체의 정치 개입이 자칫 시민운동의 도덕성에 타격을 줄 것이란 우려에서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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