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느낌 줘야 럭셔리" 프랑스 패션브랜드 지방시 CEO 코베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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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검정 드레스에 흑빛 장갑과 진주 목걸이. 흘러간 명화 '타파니에서 아침을'등을 통해 20세기 최고의 패션 아이콘으로 추앙받은 미 여배우 오드리 햅번의 스타일이다. 패션의 고전 '햅번 스타일'을 창조해 낸 게 프랑스 럭셔리(명품) 브랜드'지방시'다. 이 회사의 글로벌 최고경영자(CEO)인 마르코 코베티(48.사진)가 지난 22일 한국을 찾았다. 세계적인 패션업체의 회장 답지 않게 수행비서 없이 홀로 입국했다.

"한국에 플래그십 스토어(대형 가두 매장)를 열 계획은 아직 없습니다. 브랜드 정체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매장만 번듯하면 뭐 합니까."

그는 한국을 찾는 외국 유명 패션 브랜드의 경영진들이 흔히 쏟아내는 '영업망 확대' '공격 경영'같은 말은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대신 '지방시'하면 떠오르는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는 게 급선무라는 말을 거듭 되뇌었다.

지방시는 샤넬, 크리스찬 디올, 에마누엘 웅가로 등과 함께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컬렉션을 유지하는 몇 안 남은 전통 패션의 명가다. 하지만 1960, 70년대 전성기에 비해 많이 쇠퇴했다는 평을 들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변화가 절실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지방시의 모기업인 LVMH의 아르노 회장은 2004년 그를 영입해 다소 침체된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맡겼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 '모스키노'를 11년간 성공적으로 이끈 능력을 높이 샀다. 지방시는 특히 한국에서 고전한다. 샤넬이나 루이뷔통과 달리 지방시는 한국 시장에서 양말이나 손수건 같은 싸구려 물건을 통해 쉽사리 접할 수 있어 명품 이미지에 손상을 입었다. "인정한다. 한국 여성들에게 지방시를 물으면 특별히 떠올리는 게 없다고 한다. 80년대 라이선스 남발과 관리 실패가 주 원인이다. 이런 식의 과오는 되풀이하지 않겠다." 실제로 한국에서 지방시의 양말과 손수건은 근래 자취를 감추고 있다. 여성복과 액세서리는 FGN이 직수입하고, 남성복은 제일모직이 수입과 라이선스를 병행한다.

한국의 럭셔리 시장에 대해서 그는 나름의 관점을 갖고 있었다. "한국 시장은 이제 시작 단계다. 지방 중소도시에도 럭셔리 매장이 즐비한 일본에 비해 명품 시장이 그다지 무르익지 않았다." 너도 나도 럭셔리 브랜드를 외쳐대는 것 같지만 서울을 제외하면 수요층이 얇다는 이야기다. 그는 또 "럭셔리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비싸다는 사실 자체보다 구매자에게 특별한 느낌을 줄 수 있다는 게 럭셔리의 참뜻"이라는 것이다.

지방시는 설립자인 위베르 드 지방시가 1995년 은퇴한 이후 존 갈리아노, 알렉산더 맥퀸, 줄리앙 맥도날드 등 스타 디자이너의 산실이 돼 왔다.

글=조도연 기자 <lumiere@joongang.co.kr>
사진=김태성 기자 <ts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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