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도를 넘는 고유가, 위기의식은 어디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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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국 경제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전문가들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석유 하나만 보자. 한국은 세계 7대 석유 소비국이요, 4대 원유 수입국이다. 지난해 에너지 수입액(667억 달러)이 반도체와 자동차를 합친 수출액(595억 달러)보다 많다. 올해 경제 운용 계획을 짤 때 정부는 평균 유가를 54달러로 잡았다. 그러나 두바이산 원유만 해도 지난 주말 65.79달러까지 치솟았다.

배럴당 도입 단가가 65달러라면 보통 상황이 아니다. 무역협회 시나리오에 따르면 수입은 92억 달러가 늘고 수출은 35억 달러가 줄어든다. 지난해 경상수지 흑자(165억 달러) 대부분이 날아가는 수준이다. 교역 조건이 나빠지면 수출을 해도 남는 게 없다. "지난해 0.5%였던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이 올해는 3%로 올라 체감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신임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이 무색해진다.

이제 국제 유가는 얼마나 오를지 신(神)도 모를 지경이다. 지난주에만 6% 이상 오른 것을 보면, 배럴당 100달러가 잠꼬대만은 아니다. 유엔의 이란 핵 사찰이나 나이지리아 정정(政情) 혼란은 구실에 불과하다. 일단 마구 튀어 오른 뒤 그럴싸한 핑곗거리를 찾는 형국이다. "원유시장에 시장원리가 실종됐다"는 미국의 비난은 모기 소리에 불과하다. 이란은 "국제유가가 아직 실제 가치에 못 미친다"고 배짱이고, 베네수엘라는 "미국이 우리를 공격하면 유전을 파괴할 수밖에 없다"며 기세가 등등하다. 국제 원유시장은 완벽하게 공급자가 지배하는 구도로 짜이고 있다.

물론 우리라고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전 1, 2차 오일쇼크 때와 비교해 보자. 다행히 원자력 발전이 늘어나 국내 전력 생산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서 5%로 낮아졌다. 환율 하락이 국제 유가 상승을 완충하는 덕도 보고 있다. 국내 산업의 중심이 중후장대(重厚長大)에서 정보통신과 서비스 쪽으로 옮겨 가면서 유가 충격을 흡수할 능력도 커졌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지나친 걱정은 금물"이라며 태평한 표정이다. 긴급대책이나 관련법 제정은 '검토' 수준이다.

지금 갑작스럽게 자동차 10부제나 국제 유전 확보, 대체에너지 개발을 주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전 세계가 고유가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우리라고 피해 갈 도리는 없다. 그러나 정부가 "그동안 정석대로 해 온 만큼 경제는 상당 기간 잘돼 갈 것"이라며 태평가를 부를 때는 아니다. 1분기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영업실적에서 환율.고유가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비상경영에 돌입했지만 정부만 한가한 모습이다.

저성장과 사회양극화에 짓눌린 시민들은 오일쇼크 고통까지 겹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경제를 조금이라도 고민하는 정부라면 당연히 함께 걱정해야 정상이다. 더도 덜도 말고 부탁한다. 정부도 국민이 느끼는 수준의 위기의식이나마 함께 가져 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