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지에 북송교포 북한실상 폭로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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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경=연합】일본의 저명 월간지 문예춘추가 발간하는 주간문춘은 북한에 돌아간 재일 조총련계 인사가 최근 일본친척 앞으로 보낸 「통곡의 수기」를 입수,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생생하게 폭로하고 있다.
보복위험 때문에 발신인의 이름이나 수기 입수경위를 드러내지 않고 다만 평양근처 한 공장의 부 지배인이라고만 밝힌 이 잡지는 지금 북한에는 살인·절도·뇌물이 횡행하고 식량난과 암시장이 성행, 「수령님 공화국」 은 사태악화 일로에 있다면서 서울올림픽 개막을 10여일 앞둔 북한의 현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다음은 주간문춘이 6일자 최근호에서 「굶주림과 도둑의 나라, 북한」이란 제하로 보도한 수기내용.
여하튼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살인· 강도가 늘고 방에는 바깥출입이 어려운 상태다. 자포자기가 되어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좋지 않을 바에야 하루, 이틀이라도 살아야하지 않는가. 집에 딸아이가 있어 특히 조심하고 있지만 도저히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도둑이 몇 차례나 집에 들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큰 피해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도 손을 써주지 않았다. 생활은 갈수록 형편없어지고 있다.
오락이라곤 하나도 없다. 보아도, 들어도, 말해도 안 되는 생활, 상상이나 가는가? 영화· 책· 잡지· 노래·음악도 없다. 외국 것은 일체금지, 입도 막으라면 이젠 인간이 아니다. 김일성 김일성의 로보트에 지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사는지 알 수 없다.
인민 모두가 절망적이 되어 자포자기상태다. 이래서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강도는 주로 북한에 친척이 있어 찾아오는 소위 「조국방문단」을 노린다. 돈과 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짐 따위를 뺏기는 것은 흔한 일이고 밤길을 가다가 입었던 옷을 홀랑 벗기는 적도 있다. 방문단 중엔 3∼4차례 온 사람도 있지만 올 때마다 혼쭐이 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누구에게 말해봤자 어쩔 도리가 없어 이곳에선 모두가 그냥 살고 있다.
북한의 돈은 일체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무언가 사고 싶어도 이곳 돈으로는 안되고 외화가 아니면 통용되지 않는다. 주로 일본 돈이다.
북한 돈은 「휴지조각」 같아서 몇 백, 몇 천원을 갖고 있어도 아무소용이 없다.
담배1갑 사더라도 일본돈, 식당에 가더라도 일본돈, 어쨌든 외화, 달걀한개 사는데도 외화를 요구할 지경이다. 외화가 없으면 한 발짝도 떼기 힘든
실정이다. 국영상점에는 물건이 없어 모두 암시장에서 산다.
암시장에서도 외화가 없으면 못 산다. 이런 일은 역사적으로도 그 유례가 없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는 일본으로부터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l년에2O만엔을 송금해주더라도 편한 생활이 가능했지만 금년부터는 20만엔으로는 살 것 같지가 않다.
작년께부터 물가가 급등, 먹을 것도 없는 데다 견딜 수 없다. 달걀1개에 15전 내지 20전하던 것이 2원이 되고 10원이 되어 무려50배나 뛰었다.
무엇이든 10배, 20배다. 노동자 월급 50원 가지고 달걀 5개. 어떻게 생활을 꾸릴 수 있겠는가.
매일 죽밖에 먹을 수 없다. 아침은 먹지도 않고 공장에 가 낮에는 죽, 그리고 밤에는 간강을 친 죽을 먹는다.
지금 북한에선 제13회 세계청소년제전 (89년7월) 준비를 위해 수백억원의 돈을 쓰고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지만 이것을, 어떻게 이용할지 전혀 모르겠다.
최근 한국의 비디오 테이프를 보았다. 같은 민족으로 이렇게도 다를까 생각되어 통일은 무척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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