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땅값 올라도 너무 올라…아파트·빌라 건축시장에 찬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9면

서울 강남권에서 동호인 빌라사업을 주로 하는 M시행사는 요즘 이 지역 사업은 손을 떼다시피 했다.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다. 이 회사의 한 임원은 "주인들이 양도세를 회사가 떠안지 않으면 안 팔겠다고 버티며 땅값을 너무 높게 부른다"며 "땅을 사지 못해 지난해부터 신규 사업을 한 건도 못했다"고 말했다.

S시행사도 1년여째 강남권 주상복합아파트 부지를 물색하고 있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사실상 포기 상태다. S시행사 사장은 "재건축 외에는 곧바로 사업할 수 있는 물건이 귀하고, 있더라도 값이 너무 비싸 관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이어 서울 강남권 땅값도 초강세다. 아파트.빌라.오피스 등을 지을 수 있는 땅은 부르는 게 값이다. 지난해 아파트값이 약세일 때도 강남 땅값은 오히려 올랐다. 최근엔 재건축 아파트값까지 뛰면서 가격 흥정이 더 힘들어졌다. 단독주택 공시가격이 크게 오른 것도 추가 상승의 빌미가 될 전망이다.

강남권 땅값이 강세를 보이는 것은 강남.서초.송파구가 지난해 2월 양도세를 실거래가로 과세하는 토지투기지역으로 묶인 뒤 양도세 부담 때문에 매물이 들어간 반면 주택 사업부지를 찾는 시행사 등의 수요는 꾸준한 때문이다. 그 중 일부는 늘어난 세금을 모두 사업자에게 전가해 호가 상승의 원인이 되고 있다.

강남구 청담동의 낡은 단독.연립주택 가격은 평당 3500만~4000만원을 호가한다. 1년 전에 비하면 평당 500만~1000만원 이상 올랐다. 고급 빌라 신축이 활발했던 서초구 서초.방배동에서 1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종 분류가 되기 전에 건축 허가를 받아놓은 낡은 단독.연립주택은 지난해 이맘때보다 20~30% 올라 평당 2000만~2500만원 한다. 청담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아파트값이 지난해 약세를 보이다 올 들어 강세로 전환됐지만 아파트 등을 지을 수 있는 땅값은 떨어지기는커녕 슬금슬금 올랐다"며 "매물이 많지 않지만 값도 비싸 거래가 잘 성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상가나 빌딩 등을 지을 수 있는 상업지역 땅값도 뛰고 있다. 테헤란로의 경우 1년 전 평당 평균 6000만원에서 지금은 평당 8000만원선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강남역과 삼성역세권은 평당 1억원, 선릉역세권은 평당 7000만~7500만원, 역삼역세권은 평당 5000만~6000만원으로 1년 전에 비해 30% 가량 뛰었다.

강남구 학동 네거리-갤러리아백화점 네거리-청담 네거리를 연결하는 이른바 '삼각벨트'쪽도 지난해보다 20~30% 오른 평당 4000만~8000만원이다. 반면 강남의 상가.오피스 임대시장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정세를 보이고 있어 수요는 계속 증가세다. 더피앤디AMC 임현욱 대표는 "강남 땅부자 중에는 돈이 급한 경우가 적어 매수자들이 끌려다니는 형국"이라며 "세금까지 사업자가 떠안으면 수익성이 떨어져 사업 추진을 주저하는 회사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달 초 공개된 강남권 단독.중소형 연립주택 등의 공시가격이 크게 올라 값이 더 뛸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포시즌컨설팅 정성진 사장은 "이미 주택사업이 유망한 단독주택 집주인들은 세금을 매매가격에 전가하려고 계산에 들어갔다"며 "공급보다 수요가 많은 상황에서 강남지역 땅값은 당분간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미숙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