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서 새임대사업 인기|"놀고있는 공장 빌려줍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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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공장을 빌려줍니다.』
일본 동경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근교에 공장을 빌고 빌려주는 일이 한달에 5백여건에 달하고 있다.
큰 장비나 시설 등을 빌려주는 리스산업이 깊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일본에서 공장 자체가 새로운 임대상품으로 등장한 것은 매우 희한한 일이다.
공장임대는 일본 엔화가 상승하면서 기업들이 해외로 탈출하기 시작한 작년 초부터 부쩍 늘어났다. 높은 엔화시세로는 더 이상 수출채산이 맞지 않기 때문에 일부기업들이 공장을 폐쇄하고 동남아시아나 미국 등으로 옮겨갔다.
더구나 수도권 지역에서는 토지가격이 천장부지로 뛰어올라 기업수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었으며 동경에서 더욱 멀리 떨어진 곳으로 공장을 옮겨 경영합리화를 추진하는 기업들도 증가했다.
이 때문에 동경에서 자동차편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산업체가 문을 닫는 「공동화」 공장이 나타났으며 이를 재활용하기 위해 새로운 기업체에 공장을 임대해주고 이를 알선해주는 공장 복덕방이 성업중이다.
공장에 붙어있는 창고도 역시 훌륭한 임대상품이 되고 있다.
작년 말 일본의 수출단지 등에서 기업의 도산은 2백72건, 전업 및 휴·폐업한 기업은 3천1백49건으로 최악의 상태였으며 문을 닫은 공장도 그만큼 늘어났다.
일본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대신 일본진출을 노리는 외국기업들이 대거 몰려들기 시작했으나 땅값이 너무 비싸 수도권지역에 채산이 맞는 공장을 짓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워 결국 휴·폐업한 일본공장을 빌어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주로 미국계 및 북유럽·서독·영국계의 기계메이커 조합 등으로 부품을 생산하거나 외제자동차 정비 공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빈 창고는 엔고 이후 크게 늘어난 수입품을 보관하기 위해 일본 수입상사들이 앞을 다투어 찾고 있다.
동경도 오타(대전)구의 한 공장의 경우 한달 임대료는 평당 약 1만엔, 교외로 점점 멀어질수록 가격도 떨어진다. 동경 중심지에 있는 임대공장 서비스센터에는 공장을 빌거나 빌려주는 사람들의 본격적인 정보교환 장소로 북적거리며 임대계약건수는 한달 4백50∼6백40건에 이르고 있다.
일본으로 몰려드는 외국기업들은 공장건설을 위한 입지선택 및 완공에 이르기까지 소요되는 많은 시간과 토지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곧바로 임대공장에 들어가 기계를 돌리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수산업으로 돈벌이가 괜찮은 일본의 지방기업들은 거꾸로 동경부근의 공장을 빌어 수도권지역의 생산공급을 확대하는 경우도 있다. 【동경=최철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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