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쌀문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쌀은 벼를 가공해 인간이 먹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기원전 7000년께부터로 알려져 있다.

쌀(벼)을 가장 먼저 재배한 곳은 인도다. 인도의 쌀 재배 역사는 기원전 7000년께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반면 중국은 기원전 5000년께인 신농시대(神農時代)가 시초다. 한국에는 기원전 2000년께 중국으로부터 들어왔다.

쌀은 크게 일본형과 인도형으로 나뉜다. 일본형은 일본.한국.중국.브라질.스페인.미국의 캘리포니아주(州)에서 생산된다. 반면 인도형은 동남아시아.중국 남부.인도.미국 남부에서 생산된다. 생산지는 범세계적이다.

그렇지만 쌀은 아시아인들의 주식이다. 세계 총생산량의 92%도 아시아 지역에서 나온다. 당연히 비(非)아시아인들에게 쌀은 부차적 곡물이다. 아시아에서 쌀은 단순한 곡식이 아니다. 하나의 문화요, 생명이요, 역사다. 그리고 이런 정신은 쌀에 관한 수백개의 신화와 전설로 살아남아 있다.

동남아에 남아 있는 쌀의 기원에 관한 신화 중 시체화생형(屍體化生型)이란 게 있다. 말 그대로 죽은 사람(여자)의 몸에서 조.사고야자.코코야자 등의 재배식물과 함께 쌀이 생겼다는 신화다. 일종의 도령관념(稻靈觀念)인 것이다. 이 도령관념의 핵심은 쌀을 인격적 개체로 본다는 것이다. 당연히 쌀은 함부로 다루거나 버리거나 낭비해서는 안된다.

이런 도령관념이 강한 대표적 민족은 태국 북부에서 라오스에 걸쳐 사는 라오족(族)이다. 이들은 쌀이 단순한 곡물이 아니고 영혼을 갖춘 인격이며, 따라서 쌀 재배는 경제 활동이라기보다 초자연적인 것과 밀접한 종교적 행위로 인식한다. 동남아의 또 다른 종족인 라메트족(族)도 도령을 믿어 이 영혼이 도망가면 창고가 텅 비고 기근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현재 멕시코 칸쿤에서는 이런 도령문화와 쌀문화, 쌀관련 사업의 운명을 좌우할 세계무역기구(WTO) 회의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라메트족도, 라오족도 칸쿤에 대표를 보내지 못했다.

이들은 그들의 문화와 운명을, 남들이 왜 왈가왈부하는지 그 이유와 의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칸쿤에서 신화를 빼앗고 파괴하는 세계화 대신 희망의 세계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가.

김석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