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규의 지리산 가을편지] 우리 몸속의 태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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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차피 인간의 힘으로는 피할 도리가 없지만, 태풍을 정면으로 맞는다는 것은 분명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천둥 벼락이 치고 지붕이 날아가는 바람 속에서 두렵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 태풍 또한 아주 사소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아는지요. 카오스 이론의 하나인 '나비 효과'가 바로 그것입니다.

아프리카의 어느 곳에서 나비 한 마리 나폴 나폴 날아오를 뿐인데 태평양의 한 바다에서 태풍이 시작됩니다. '매미'의 이름으로 태어나 '매미'의 이름으로 죽어간 이 태풍도 시작은 사소했으나 그 위력은 실로 무서웠습니다. 절망과 고통을 먹고 자라서인지 엄청난 슬픔을 주었지요. 태풍은 우리 모두의 공업(共業)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요. 태풍도 없이 어찌 한번이라도 겸허해질 수 있겠는지요. 태풍 전야의 고요와 태풍 직후의 적막은 일란성 쌍둥이지만, 그 표정은 평화와 전쟁의 두 얼굴입니다. 우리들의 몸 속 깊숙이 도사린 태풍, 우선 그분부터 잘 다스려야겠지요. 어쩌다 한번 잘못 먹은 마음이 바로 걷잡을 수 없는 태풍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이원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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