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한라산’과 ‘한나산’의 연결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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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세계의 눈이 북·미 정상회담에 쏠려 있다. 한반도의 봄을 앞당길 수 있는 합의가 나올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백두에서 한라까지 평화의 불이 밝혀지면 분단된 시간만큼 격차를 보이는 남북한 언어를 돌아볼 차례다. 남북 합동공연 때 화제가 됐던 ‘백두와 한나는 내 조국’의 노랫말에서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북에선 한라산(漢拏山)을 ‘한나산’으로 적는다. ‘붙잡을 나(拏)’를 본음 그대로 취한 형태다.

북한과 달리 우리는 ‘한라산’으로 표기한다. 한자어는 본음으로도, 속음으로도 발음하는데 ‘拏’를 속음 ‘라’로 읽은 것이다. 속음은 한자음을 읽을 때 본래 음과 달리 일부 단어에서 굳어져 쓰이는 음을 말한다. 발음하기 쉽고 듣기 좋은 소리가 되게 하려는 활음조 현상이다. 한글 맞춤법 제52항은 한자어에서 본음으로도 나고 속음으로도 나는 것은 각각 그 소리에 따라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자어를 본음이 아닌 속음으로 쓰는 예로는 희로애락(喜怒哀樂)·대로(大怒), 허락(許諾)·수락(受諾), 곤란(困難) 등이 있다.

북한도 속음 표기를 인정하나 우리보다 폭이 좁다. 한자음 형태를 되도록 안 바꾸려 한다. 북에서 두음법칙을 버린 이유다. 우리가 속음을 표준말로 삼은 ‘허락’ ‘희로애락’은 북에서도 표기가 같지만 ‘곤란’은 ‘어려울 난(難)’이란 본음을 살려 ‘곤난’으로 적는 식이다.

이은희 기자 lee.eunhee@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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