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빈 스페이시의 '케이-펙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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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자신을 외계인이라고 주장하는 한 남자가 있다. 고향은 지구에서 1천광년 떨어진 별 케이-펙스. 그는 자신이 5년간 지구 문화 연구차 머물렀으며 이제 곧 고향별로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보기는 무리다. 이 남자가 케이-펙스와 관련된 천체 물리학에 너무나 밝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수 과학자만이 알고 있는 지식도 지니고 있다. 정말 이 남자가 외계인일까?

'케이-펙스'는 두 남자가 벌이는 '진실 게임'이다. 노상 강도 사건에 휘말려 정신병원에 오게 된 프롯(케빈 스페이시)과 담당 의사 마크(제프 브리지스)가 주인공이다.

마크가 보기에, 그리고 관객이 보기에 프롯은 외계인이 맞는 것 같다. "당신네 행성은 너무 밝다"며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프롯은 앉으라(Have a seat)는 말에도 "자리를 가지라니, 기묘한 표현이군"이라고 말한다.

그가 제공하는 케이-펙스의 정보도 상당히 그럴싸하다. 프롯에 따르면 케이-펙스에는 결혼 제도가 없기 때문에 '아내'란 단어도 없다. 섹스를 하긴 하지만 악취.멀미.복통을 수반하기 때문에 2세를 생산하는 과정은 극히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여기까지 마치 SF물인 것처럼 흘러간다.

그러나 마크가 프롯을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케이-펙스'는 미스터리 성격이 짙어진다. 프롯은 과연 외계인일까? 외계인이라면 그는 지구에 왜 온 것일까? 만일 외계인이 아니라면? 이 별난 사나이에게 직업적 관심을 넘어 인간적 호기심을 느낀 마크는 프롯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반전을 숨겨둔 종반에 이르면 다시금 휴먼 드라마로 탈바꿈을 시도한다. 사실 외계인이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다는 것. 마크는 프롯을 통해 사이가 나빠 얼굴도 보지 않고 사는 아들과의 화해, 더 나아가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했던 가족과의 화해를 하게 된다.

특정 장르에 매이지 않는 탄력은, 그러나 할리우드식 가족주의로 끝을 맺으면서 김이 확 빠져버린다. 가족적 가치를 강조한 덕분인지 미국에서는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다.

'유주얼 서스펙트''아메리칸 뷰티'등에 비하면 케빈 스페이시의 출연작치고는 한참 떨어지는 범작이다. 감독은 비틀스를 소재로 한 '백비트'로 데뷔해 '해커즈'등을 만든 이언 소프틀리. 19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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