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부고속도로 8중추돌 버스사고 1년…여전히 주 70시간 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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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버스 운전기사, 졸음을 쫓기 위해 껌을 씹고 부단히 움직인다. [중앙포토]

광역버스 운전기사, 졸음을 쫓기 위해 껌을 씹고 부단히 움직인다. [중앙포토]

"새벽 5시에 회사 차고지로 나와 준비하고 5시 35분에 첫차 운행을 시작한다. 5타임 돌면 밤 10시쯤 마치는데 정리하면 11시 넘어 집에 간다. 4타임, 5타임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근무 패턴이 반복된다."

지난 4일 경기도 버스 회사 오산교통 소속 기사 A씨는 이같이 말하며 "다음 날 쉬어도 전날 20시간 가까이 일하면 누구나 녹초가 된다"고 덧붙였다.

졸음운전 버스사고 1년 다가오지만 여전히 주 70시간 일해

지난해 7월 경부고속도로 8충 추돌사고로 버스 기사의 무제한 연장 근로와 과로 운행이 사회적 논란이 됐다. 당시 사고를 낸 오산교통 소속 버스기사는 이틀에 30시간, 주당 70시간 넘게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노선 버스 기사의 무제한 연장근로는 근로시간 단축 이슈와 함께 도마 위에 올랐고 정부와 노동계의 논의, 국회 입법은 급물살을 탔다. 사고가 난 지 1년이 다가오고,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오는 7월부터 주당 68시간 근로 제한을 앞두고 있지만 지난 4일 만난 오산교통 소속 버스 기사들은 여전히 매주 68시간 이상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지난해 7월 9일 발생한 경부고속도로 추돌사고. [독자 제공]

지난해 7월 9일 발생한 경부고속도로 추돌사고. [독자 제공]

버스기사 B씨는 "회사가 정한 회차당 2시간30분 운행시간을 지키다 보면 무리하게 과속 운전과 신호 위반을 해야 한다"며 "도로나 교통 사정으로 운행 시간이 3~4시간으로 늦어지면 밥도 챙겨먹기 어려워 김밥이나 도시락을 싸 중간에 쉴 때 식사를 한다"고 전했다. 반면 오산교통 측은 "작년 7월 사고 이후 전 노선 시간표를 조정했고 법정 휴게시간도 철저히 보장한다"며 "노선 운영 회차를 줄여 차가 이전 보다 덜 다니고 운행정보 단말시스템에 따른 근로시간도 사고 전보다 평균 1시간이 줄었다"고 밝혔다.

어디까지 근무로 봐야하나 엇갈려…사측 "근무여건 개선돼"

어디까지를 근로시간으로 볼 것인지도 엇갈린다. 노사는 단체협약을 통해 하루 운행을 16시간 노동으로 인정했다. 회사는 운행정보 단말시스템을 근거로 이를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기사들은 사용자 지배관리하에 있는 운행 준비 시간을 넓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회사 측은 "우리 회사만 68시간이 넘는 건 아니다. 다른 회사는 단체협약에 따라 하루 운행을 17, 18시간 노동으로 본다"며 "법 개정으로 현행 체계 유지가 어렵다. 근로시간단축 문제는 경기도와 버스업체,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등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에 따르면 오산교통의 버스 기사 수는 지난해 7월 사고 당시 129명에서 114명으로 줄었다. 김옥랑 전국자동차노조연맹 오산교통지부장은 "열악한 근무여건으로 기사들은 사고 이후 점점 줄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6470원과 6670원의 최저시급이 대형 버스 7800원, 중형 버스 7700원으로 오른 것이 회사가 말하는 처우 개선의 전부다"고 주장했다.

 지난 4일 경기도 오산교통 차고지. 지난해 7월 사고 이후 오산시의 지원으로 이전했다. 여성국 기자

지난 4일 경기도 오산교통 차고지. 지난해 7월 사고 이후 오산시의 지원으로 이전했다. 여성국 기자

이 가운데 정부와 고용노동부, 버스 업체 노사는 지난달 31일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에 합의했다. 지난 2월 근로기준법 개정 이후 인력 충원과 임금 감소 문제에 대해 의견 수렴을 거친 결과다. 노사정은 노선버스의 운행이 현재와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도록 2019년 6월 30일까지 한시적으로 1일 2교대제 미시행 지역 및 사업장에 대해 근로 형태를 유연하고 탄력적으로 운영하는데 협력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의 임금 보전과 안전 우려에 대한 딜레마는 계속된다. 오산교통 소속 기사 C씨는 "근로시간 단축 관련해 임금은 임금대로 아쉽지만, 과로 운행으로 안전에 대한 걱정도 된다"며 "서울, 부산과 같은 공영제나 준공영제 전환 등 근본적인 논의는 빠진 채 제도 시행에 따라 현장의 기사와 회사가 임금과 근로시간을 알아서 조정하도록 등 떠미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300인 이상 버스 회사의 경우 2019년 7월 1일부터 주 52시간을, 300인 이하 버스 회사는 2020년 1월 1일부터 주 52시간 근무를 시행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1일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에 합의, 서명식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류근중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위원장, 김현미 국토부 장관, 김영주 고용부 장관, 김기성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장. [연합뉴스]

국토교통부,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31일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와 노선버스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을 위한 노사정 선언문에 합의, 서명식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류근중 전국자동차노동조합연맹 위원장, 김현미 국토부 장관, 김영주 고용부 장관, 김기성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장. [연합뉴스]

"연착륙, 준공영제 필요", "요금 인상, 비효율 노선 축소 같이 가야"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운수 업체의 주 52시간 연착륙을 위해서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버스 기사 수급 문제, 처우 문제는 물론 버스 업체 영세성을 극복할 방안이 필요하다. 준공영제 확대를 통해 영세업체 재정부담을 줄이고 지방정부가 중심을 갖고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 연착륙에서 중요한 건 임금 감소를 최소화하며 법 위반을 피하는 것이다. 업종에 따라 유예 기간이나 예외를 정하거나 1년 단위 탄력근무제도 일시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숭욱 한국교통연구원 대중교통연구센터장은 "정부가 운수사업장 현실을 반영한 보완대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며 "탄력근로제는 해결책이 아닌 임시방편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농어촌과 출퇴근 시간 이외에는 대도시 중복 과잉 운행 지역 등 비효율 노선을 줄이고 정부가 이해관계자들에게 솔직하게 버스요금 인상 등 사회적 부담과 배차 간격 불편을 감수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설득하는 정공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성국·김지아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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