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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엘과 솔로몬의 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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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적대와 우정은 지구상 어느 곳에나 퍼져 있다. 때론 적대의 토양에서 우정의 꽃이 피어난다. 불가능할 것 같은가. 아니다. 우리 마음속엔 이미 그런 씨앗들이 뿌려져 있다. 생각의 씨앗이다. 적대의 이유를 반문해 보라. 그리고 공존의 이득을 따져 보라. 감정과 분노로 뒤범벅된 세력관계에서 생각은 우정의 실마리를 싹 틔우곤 한다.

현직에서 은퇴한 60대 미국인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의 이름은 요엘, 다른 사람은 솔로몬이다. 25년간 요엘은 IBM에서 일했고, 솔로몬은 레바논에서 수학교사를 했다.

요엘은 유대인이다. 자기들을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으로 살아온 민족이다.

솔로몬은 아랍인이다. 1939년 예루살렘 부근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유대인들이 집단정착하며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바람에 레바논으로 쫓겨났다. 유대와 아랍 민족은 지구상에서 가장 적대적이다. 피의 보복전을 벌이고 상대방의 신을 부정한다.

그런데 요엘과 솔로몬은 둘도 없는 친구다.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랜타에 산다. 그 지역을 출장 중이던 기자는 4월 3일 요엘의 집에서 솔로몬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솔로몬이 요엘과 사귀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3년 전 한 토론회에서 동족의 아랍인이 이스라엘을 비난할 때 솔로몬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증오하는 건 어리석다"고 반박했다. 토론 뒤 청중석에 있던 요엘이 솔로몬을 찾아가 "용기 있는 발언"이라며 악수를 청한 게 둘의 우정의 출발이었다.

솔로몬은 고향 레바논에 가면 요엘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촌 동생이 한번은 "어디 가서 유대인과 친하다는 말을 하지 마세요. 극단주의자들이 형을 죽일지 모르니까요"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다.

솔로몬도 한때 유대 민족을 악의 근원이라고 믿었다.

그런 전통적 믿음은 어떻게 깨어졌던가. 29세 때다. 그가 속했던 레바논 학교의 아랍인 교장이 "유대인들은 모두 악마인가? 우리 아랍인들은 과연 모두 선인가?"라고 반문했다. 솔로몬은 그 놀랍고 대담한 질문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고 했다. 솔로몬은 선배 교사의 근원적 질문을 회피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고뇌를 거쳐 그는 '세상에 증오와 살인과 전쟁을 정당화할 절대 선은 없다'고 결론내렸다. 솔로몬의 깨달음은 만남과 교육이 자극한 '생각하기'에서 나왔다.

솔로몬이 선배 교사를 만났다면 요엘은 유대교 성직자인 아버지에게서 영향을 받았다. 아버지는 신앙심이 깊었지만 독단적(dogmatic)이지 않았다고 한다. 요엘은 자기 민족의 풍속과 문화가 자랑스럽다. 하지만 아랍인을 적대하는 선민의식을 버린 지 오래다. 적대감보다 공존의식으로 얻을 이익이 훨씬 많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요엘은 전통적인 유대주의의 배반자다. 애틀랜타에서 그들과 함께한 저녁은 빛나고 아름다운 우정의 식탁이었다.

다시 서울에 돌아와 한국과 일본을 생각한다.

우리가 버려야 할 전통적 믿음은 없을까. 일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 모두를 적대시하는 감정은 없었는가. 일본 극우주의 선동 정치인과 군국주의 과거사만 크게 보는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 일본과 공존해 얻을 정신과 물질, 문화의 이득을 소홀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국체유지와 영토보전의 헌법적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정부끼리는 때로 과격한 외교와 군사적 충돌을 엄포 놓을 수 있다. 그렇지만 정부는 국민의 바다에 떠 있는 배다. 생각하는 국민끼리는 우정을 이어가야 한다. 국민 간 이해가 깊어지면 정부 간 과격 충돌은 줄어들 것이다.

전영기 정치부문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