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대폭 개방 현실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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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쿤(멕시코)=정재홍 기자]관세를 크게 내리고 보조금을 감축하는 등 농산물 시장의 대폭 개방이 현실화됐다. 농업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쌀을 비롯한 일부 농산물은 관세를 점진적으로 내릴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됐다. 이같은 시장 개방은 새로운 무역질서인 뉴 라운드(일명 도하개발라운드·DDA) 체제(2005년 목표)와 함께 시행될 예정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제5차 각료회의 폐막 하루 전인 13일(현지시간) 의장 직권으로 각료선언문 초안을 만들어 배포했다. 이 안이 협상을 거쳐 14일 전체 총회에서 통과되면 각료선언문으로 확정된다. 각료선언문은 뉴 라운드의 기본 틀이 돼 추가 협상을 통해 관세 감축 비율 등 구체적 수치를 넣은 세부 원칙을 확정할 예정이다.

최대 쟁점인 농산물 분야는 품목에 따라 ▶점진적으로 관세를 인하하는 방식(우루과이 라운드(UR) 방식) ▶관세가 높은 품목을 많이 내리는 방식(스위스 방식) ▶무관세 방식을 일정 비율로 섞어 관세를 인하하도록 했다. 또 세 방식을 통해 산출한 관세율의 평균이 일정 수준 이하가 돼야 한다.

지나치게 높은 관세를 방지하기 위해 관세 상한을 설정하고 이를 웃돌 경우 낮은 관세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물량(TRQ)을 늘리도록 했다. TRQ를 어느 정도의 관세에 얼마 만큼 늘리느냐는 수출국과의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쌀과 같이 정치·경제적으로 중요한 일부 제한된(very limited) 품목은 관세를 최소한으로 낮출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넣었으나 향후 협상에 따라 삭제될 수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이 조항이 유지될 경우 내년부터 시작되는 쌀 시장 개방을 위한 재협상에서 개방 폭을 조절할 수 있는 근거가 돼 우리에게 유리해진다.

이와 함께 추곡수매제와 같이 가격이나 생산량을 지지하는 보조금을 2000년 수준보다 삭감하도록 했다. 이명수 농림부 국제협력국장은 “추곡수매 보조금이 매년 줄어드는 추세여서 별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도상국 우대를 위해 관세 감축 의무를 완화하고 이행기간도 늦출 수 있도록 했다. 개도국은 민감한 농산물을 특별품목(SP)으로 지정해 개방을 늦출 수 있도록 했으며, 자국 농산물이 수입 농산물로 피해를 입을 경우 특별긴급수입제한조치를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세부 원칙이 확정된 뒤 추후 수출국과의 양자 협상에서 개도국 지위를 인정받느냐 여부가 개방 폭과 속도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허상만 농림부장관은 “우리가 주장했던 관세 상한 설정 반대와 TRQ 폐지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남은 협상을 통해 반영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등 농산물 수입 10개국(G10)과 농산물 수출 개도국 22개국(G22) 이 안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으나 약간의 자구 수정을 통해 선언문으로 확정되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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