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민구단' 최고 타자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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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한 이승엽(30.요미우리 자이언츠)이 연일 맹타를 터뜨리고 있다. 16일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요코하마 베이스타스와의 경기에서 이승엽은 시즌 4호 홈런과 함께 5타수 2안타 2타점을 기록했다. 센트럴리그 타격 2위로 올라섰고 최다 안타, 타점, 득점 등 각종 공격 부문에서 선두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승엽의 화려한 성공은 소신과 집념, 노력과 몰입이 빚어낸 찬란한 열매다.

지난 1월 13일. 이승엽이 전 소속팀이던 지바 롯데에서 자유계약 선수로 공시됐다. 지난 2년간 롯데에서 뛰었고, 직전까지도 "롯데에 남겠다"고 말해 왔던 이승엽이었다. 그런 이승엽이 그날 롯데를 떠나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렇다면 행선지는? 일본 최고의 명문 구단, 일본인들에게 '국민의 구단'으로 불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였다. 주변 사람 모두가 반대했다. "요미우리는 외국인 선수에게 배타적이다" "그 팀은 한국 선수들의 무덤이다"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과거 조성민.정민철.정민태 등이 요미우리에 진출했다가 꿈을 펼치지 못하고 보따리를 쌌다.

이승엽은 침묵했다. 공개적으로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승엽은 주변 사람들에게 e-메일로 심정을 전했다. 그는 "모든 건 올해 성적이 말해 준다. 성적이 내 선택의 옳고 그름을 가려 줄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소신있게 도전해 보겠다는 의미였다.

그는 요미우리로 옮기면서 연봉이 깎이는 것도 감수했다. 지난해 롯데에서 2억 엔(약 16억2000만원)을 받았던 그는 그 연봉을 보장해 준다는 롯데를 뿌리치고 1억6000만 엔(약 13억원)에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었다. 이승엽이 적은 돈을 받아가면서까지 갈망한 것은 단순했다. 경기에 나가는 것이었다. 롯데에서 이승엽은 지명타자나 대타로 뛰는 반쪽 선수일 수밖에 없었다. 주전 1루수 후쿠라가 있었고, 밸런타인 감독은 이승엽에게 왼손 투수를 상대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승엽은 요미우리로의 도전을 선택했다. 모험이었다.

일단 선택을 내린 이승엽은 앞만 보고 노력했다. 지난 겨울 고향인 대구의 세진헬스클럽에서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 파워를 키웠다. 몸무게는 8㎏(92㎏→100㎏.요즘은 96㎏ 유지) 늘렸고, 팔뚝 둘레는 16.5인치, 허벅지 둘레는 28인치로 키웠다. 단백질 섭취를 위해 달걀을 하루 20개씩 먹었고 보양을 위해 장어탕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승엽은 지난 2년간 롯데에서 좌절과 재기의 반전을 맛보며 강해졌다. 첫 해 일본 투수들의 패턴에 적응하지 못해 형편없이 고전했고, 시즌이 끝난 뒤 하루 2000개의 스윙 훈련으로 다음 시즌을 대비했다. 손바닥은 껍질이 벗겨졌지만 가슴에는 자신감이라는 새살이 돋아났다. 그 노력의 대가가 지난해 30개의 홈런이었다.

일본 야구에의 적응, 자신감, 그리고 치밀한 분석에다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무장한 이승엽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이라는 뜀틀을 만나면서 최고의 타격감각까지 보탰다. 그 절정의 타격감각으로 WBC에서 5개의 홈런을 때리고 일본 캠프에 합류한 이승엽을 요미우리 하라 감독은 '팀 역사상 세 번째 외국인 4번 타자'로 예우했다.

요미우리 4번 타자는 곧 '일본 야구 최고의 팀에서 최고 타자'라는 징표다. 자신을 인정해 주는 환경은 이승엽에게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 줬다. 그는 개막전(3월 31일)부터 홈런포를 가동했고 이후 매주 일요일에 홈런을 한 방씩 보태고 있다. 이승엽은 말한다. "지금 감이 좋다. 일본에서는 힘을 앞세우면 결과가 좋을 수 없다는 걸 2년의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가볍게, 타이밍을 맞추는 스윙이 답이다. 홈런은 그 과정에서 따라올 뿐"이라고.

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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