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친 돈 안 갚으면 장기 팔겠다” 직원 칼로 협박한 중고차 대표 구속…’신체 포기 각서’까지

중앙일보

입력

“지금 감금당해서 장기가 팔리게 생겼어. 돈이 필요해”

"4000만원 빼돌렸으니 손해배상금 3억여원 갚아라" #사무실에 가둬놓고 무차별 폭행·협박

지난 2월 13일, A씨(32)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돈을 빌려줄 것을 부탁했다. 자신이 근무하던 수원의 한 중고차판매 업체 사무실에 감금 당한 뒤였다. 업체 대표 김모(42)씨 부부와 직원들은 훔쳐간 돈을 갚으라며 A씨의 얼굴과 몸을 마구 때렸다. 협박에 못 이긴 A씨는 ‘신체포기 각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돈을 갚지 않으면 장기 매매업자에게 신체 장기를 팔겠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2월 14일 A씨가 훔친 돈을 갚지 않으면 장기를 팔겠다는 협박 끝에 작성한 신체포기각서 [서울 성동경찰서]

지난 2월 14일 A씨가 훔친 돈을 갚지 않으면 장기를 팔겠다는 협박 끝에 작성한 신체포기각서 [서울 성동경찰서]

사건의 발단은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A씨는 약 3년간 근무했던 중고차판매 업체에서 4000만원을 횡령했다. 개인 대출금을 갚기 위해 중고차 매입 대금을 빼돌린 것이다. 하지만 A씨의 범행은 금방 들통이 났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김씨 부부는 A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들의 협박은 소송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소송이 끝나기도 전에 A씨가 4000만원을 횡령해 이자금까지 포함해 총 1억 7000만원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끝까지 떼인 돈을 받아내겠다"며 "경찰에 신고하여 교도소 보내겠다”고 말했다. 겁에 질린 A씨는 지난해 8월부터 지난 2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총 1억 4400만원을 마련해 갚았다. 월세방 보증금을 빼고, 가족 및 지인들에게 돈을 빌린 돈이었다.

훔친 돈을 갚았지만 무서운 협박은 날로 더해갔다. 급기야 김씨 부부 등은 지난 2월 A씨를 사무실로 불러 감금·폭행한 뒤 추가로 1억 5000만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A씨가 처음으로 신체포기각서를 쓰게 된 시점이다. 김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자동차 담보대출을 받게 해 돈을 가져오라”며 그를 윽박질렀다. 다행히 주변인들로부터 가까쓰로 2160만원을 마련한 A씨는 이튿날 풀려날 수 있었다. 김씨 일당은 오는 3월 6일까지 돈을 추가로 마련해오라고 겁박했다.

날짜가 다가왔지만 돈을 더 마련할 수는 없었다. 신체포기각서에 적힌 3월 6일이 되자 김씨 일당은 다시 A씨를 사무실로 불렀다. 김씨는 “좋게 이야기하니까 너 못죽일것같아서 그러냐”며 칼로 위협하기까지 했다. A씨는 경찰에 전화해 상담을 했지만 보복이 두려워 차마 신고하지 못했다. 다행히 자동차 담보대출을 받아 돈을 빌려줬던 친구의 신고로 악몽은 비로소 끝이 났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23일 중고차 업체 대표 김씨 부부 등 4명을 특수강도·협박 혐의 등으로 검거했다고 밝혔다. A씨는 CCTV, 협박 음성 녹음을 제출했고, 업체 사무실에서는 범행에 쓰인 과도와 신체포기각서 등이 발견됐다. 경찰은 지난 17일 이중 김씨 등 2명을 구속하고 모두 검찰에 송치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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