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여자육상의 간판 이은정 달리기를 멈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한국 여자 육상 장거리의 희망' 이은정(25.삼성전자.사진)이 위기에 처했다. 13일 대한육상경기연맹과 삼성전자 육상단에 따르면 이은정은 현재 훈련을 거의 중단한 상태다. 대신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병원 측은 우울증 소견을 냈다고 한다.

육상연맹 관계자는 "특별히 아픈 데는 없는데 매사 의욕이 없고, 말수도 줄었다"고 이 선수의 근황을 전했다. 삼성전자 육상단 측은 "오랜 전지훈련 때문에 은정이가 많이 지쳤다"고 밝혔다.

육상연맹 관계자들은 우울증의 원인을 삼성전자 육상단 특유의 꽉 짜인 훈련스케줄 탓으로 돌린다. 장기화한 합숙과 전지훈련에 선수가 염증을 냈기 때문으로 풀이한다. 기숙학원식의 '먹고 자고 훈련하는' 체제에 적응하지 못했다는 분석이다. 한 중견 육상인은 소속팀이 각종 국내 대회 참가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정 정도의 선수라면 각급 대회에서 받는 상금도 적지 않을 텐데 이런 기회가 봉쇄돼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단짝이던 오정희 선수가 지난해 가을 결혼하면서 팀을 떠나자 부쩍 외로움을 느낀 것 같다고 했다.

이은정은 지난해 11월 도쿄마라톤에서 레이스 도중 기권했다. 2006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을 겸했던 2일 전주마라톤에도 출전하기로 했다가 대회 직전 불참을 통보했다. 이은정이 마라톤 풀코스를 달린 것은 2004년 8월 아테네 올림픽이 마지막. 1년8개월째 풀코스를 달린 적이 없다.

이에 따라 이은정을 아시안게임 마라톤 대표로 선발하려던 육상연맹도 딜레마에 빠졌다. 공백기가 너무 긴 데다 훈련량이 절대 부족해 입상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육상연맹의 한 임원은 "마라톤도 경기감각이 중요한데 은정이는 너무 오래 쉬었다"고 부정적 반응을 내놓았다. 육상연맹은 한국기록을 갖고 있는 5000m와 1만m 대표로 뽑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그러나 이것도 국내 대회에서 수준급 성적을 내야 선발이 가능하다.

이은정은 이달 말 종별선수권대회에도 불참한다. 5월 중순 한국육상선수권이 마지막 기회지만 지금 상태로는 이마저 출전이 어려워 보인다.

신동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