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못 먹어 왜소한 북한청년들 두고만 볼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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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북한 청년의 평균키가 15㎝나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신화통신이 엊그제 AP통신의 2005년 아시아통계연감을 인용,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25세 한국 청년의 평균키가 1m73㎝인 반면 북한 청년의 평균키는 1m58㎝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신화통신도 그 원인을 생활조건과 영양상태의 차이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고 한다.

북한이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면서 주민의 영양상태가 나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로 인해 북한 주민, 특히 어린이들의 발육이 부진하다는 것도 새로운 뉴스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 청년들이 우리 청년들보다 15㎝나 작다는 소식엔 같은 민족으로서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1m58㎝면 우리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학교 저학년의 평균키 정도가 아닌가.

북한 주민이 못 먹어 못 크는 일차적 책임은 북한 정권에 있다. 입으로는 지상낙원을 떠벌리면서도 제 인민들 먹는 문제 하나 건사 못하는 그들이 야속하고 원망스럽다.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잘먹고 잘사는 북한 고위층의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북한 주민의 이 같은 고통을 강 건너 불 보듯 한다면 우리에게도 궁극적 책임이 돌아온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책임은 한 정권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 한 세대 이상 지나 남과 북의 인종 자체가 달라질 정도로 체형이 달라진다면 우리는 역사와 민족 앞에 죄를 짓는 것이다. 그 죄는 어떤 이념이나 변명으로도 정당화되거나 면책될 수 없다. 후대 어느 날 통일이 됐을 때 단지 반도의 북쪽에 살았던 조상을 뒀다는 이유만으로 체격이 왜소해졌다면 그들이 북한 정권만 원망하겠는가.

의식주, 그 가운데서도 먹는 문제는 삶의 기본이요 시작이다. 그래서 못 먹은 한은 그 어떤 한보다도 오래간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다. 독일 정부의 공식통계에 따르면 독일 장년이나 노년층에 뚱보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절대 궁핍에 시달리면서 먹는 데 한이 맺혔기 때문이다. 아일랜드인은 영국인을 미워한다.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는 것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 1800년대 대기근 때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데도 '해가 지지 않는' 잘사는 이웃 대영제국이 이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들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이다. 우리는 입만 열면 단군을 조상으로 모시는 단일민족임을 강조한다. 그런 우리가 북녘의 형제들이 굶어 죽어가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마저 다른 민족처럼 체형이 달라지는데 이를 못 본 체 한다면 같은 민족으로서 도리가 아니다. 한쪽에선 웰빙 운운하면서 살빼기 전쟁을 치르느라 부산한데 다른 한쪽에선 굶주림에 시달린다면 말이 되겠는가.

우리가 예산의 1%를 북한에 지원하자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인도적 입장에서, 그리고 역사와 민족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북한 주민의 식량난과 의약품 부족만큼은 우리가 해결해 주자는 것이다. 민족은 이념이나 사상에 앞서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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