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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기사는 가장 낙후된 장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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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 인간의 죽음을 가벼운 뉴스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죽음을 사건이나 범죄 속에 포함된 기록으로만 존재케 하거나, 다른 기사들에 파묻힌 채 한 귀퉁이의 게시판 정보로 그치게 해서는 너무 아쉽다. 죽음이야말로 얼마나 확실한 현실이며, 얼마나 다양한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가. 살아가는 것 못지않게 죽음도 비장한 사건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놓고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임을 고려하면 죽음은 삶과 함께 있는 것이지 동떨어진 게 아니다. 죽음은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신문의 기능에 중요한 소재인 것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죽은 사람의 묘지가 도시 한복판에 어린아이들이 뛰노는 놀이터와 같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것처럼 신문 지면에도 산 사람들의 이야기와 죽은 사람들의 부고 기사가 잘 어우러져 있다. 지역신문은 물론 전국지에서도 부고 기사를 여러 면에 걸쳐 크게 취급한다. 중요한 장르로 판단하는 것이다. 열독률도 다른 피처 기사보다 높은 50% 이상을 기록한다. 부고 기사는 18세기 말에 시작돼 처음에는 유명인의 이력을 짧게 소개했는데 영국의 권위지인 타임스는 이미 1920년대 독립적인 부고 기사 담당 편집자를 뒀다. 근래에는 부고 기사에 대한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중앙일보도 독특한 부고 기사를 개발해야 한다. 살아있는 사람을 보도하듯이 사망한 인물의 인생을 전달할 수 있는 기사를 개발해 가야 한다. 대상 인물도 다양한 직업.문화.계층을 폭넓게 다뤄야 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진정성.전문성.이타성을 인정받았던 존경할 만한 인물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삶과 업적, 남기는 이야기들을 소상하면서도 여운이 서린 문체로 기록해 문학작품 같은 향취를 느낄 수 있게 했으면 한다.

1921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소련군의 폴란드 침공을 경험하고 2006년 3월 27일 사망한 렘이라는 폴란드 작가의 부고 기사는 독자에게 여운을 남긴다. "인생의 말년에 가까워질수록 렘은 인간의 역사 그 자체가 이성적 담론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2003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더 오래 산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의 수명은 점점 짧아져 가고 있다'. 21세기를 말하며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너무도 빨리 죽어간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아마도 그가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는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우리를 위해 만들었던 세계는 픽션을 통해, 그리고 역사를 이해하려는 그의 영웅적 노력을 통해 분명 남을 것이다."(인디펜던트.2006년 3월 31일자). 우리나라 신문에서라면 '렘 별세. ××의 모친, 4월 11일, ○○병원, 발인 4월 13일'로 처리되기 십상이다. 신문은 무엇을 전달하려는 것일까. 신문은 인간에 대한 성찰과 여운을 담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매체임을 상기한다.

김정기 한양대 교수 신문방송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