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전복’ 인문학은 어디 갔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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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호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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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업 인문학

반기업 인문학

反기업 인문학
박민영 지음, 인물과사상사

인문학, 또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과학기술 또는 IT와 결합하면 인류가 이상향에 도달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은 이들은 대부분 플랫폼 기업의 최고 경영자다.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는 스무 살에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 연결한다’는 신조로 혜성처럼 등장했고, 융합형 인재의 상징인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인문학’을 주장했다. 무슨 물건이든, 개념이든, 인문학을 갖다 붙이면 멋진 성공담으로 변신했다. 인문학은 21세기에 기업과 자본을 파는 첨병으로 떠올랐다.

지난 10여 년 한국 사회 전반에 몰아쳤던 이런 인문학 열풍을 문화평론가이자 인문사회 작가인 저자는 한마디로 ‘기업 인문학’이라 후려친다. 인문주의란 ‘전복적 도전’과 동의어이고, 인문학적 사고는 반성·회의·비판이 핵심인데 현실은 반대의 징후가 많고 점점 보수화되어왔다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인문학이 유행이라는데,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죽어간다. 왜일까?

기업이 인문학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문학은 기업 이익의 논리에 복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기업 인문학이다. 오늘날 기업 인문학은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진보 지식인이라 손꼽히던 인물들까지 친기업적 사고로 이끄는 안내자 구실을 하도록 변질시켰다.

자본권력이 추동한 기업 인문학은 정통 인문학이 아니다. 기업 인문학은 인류를 위협하는 인공지능을 내세우며 제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음울한 예측을 내놓는다. 이를 미끼로 더 첨예하게 자본의 포로가 되어가고 있는 기업 인문학을 비판할 수 있는 ‘반(反)기업 인문학’이 절실하다는 것이 이 책의 문제의식이다.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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