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치는 외교관 … 국악도 심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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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1일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스페인 대사관 주최 음악회 공연에 앞서 콜로메 대사가 자작곡을 직접 연주하고 있다. 박종근 기자

델핀 콜로메(60) 주한 스페인 대사는 30년 경력의 직업외교관이다. 지난해 7월 서울에 부임한 그는 전문 음악가이기도 하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활동하며 종종 지휘봉도 잡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성화봉송 행사에서 음악감독을 맡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가 작곡한 협주곡.교향곡.합창곡이 60곡을 넘는다. 아마추어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다른 이의 의뢰를 받고 곡을 짓기도 한다. 요즘엔 네덜란드에서 부탁받은 클라리넷 독주곡, 프랑스에서 의뢰받은 합창곡과 현악 사중주 곡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다.

11일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스페인 출신 피아니스트 다빗 고메즈의 독주회에서도 콜로메 대사의 곡'나무 세 그루(Three Trees)'가 연주됐다. 연주회에서 만난 그는 "마침 이번 주에 60세 생일을 맞는데, 한국인들과 스페인 문화를 함께 나누며 의미 있는 환갑 잔치를 하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는 "연주된 피아노곡은 일본식으로 꾸며진 정원을 산책하다 영감을 얻어 작곡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어릴 적 꿈은 음악가였다. 여섯 살 때 첫 피아노 독주회에서 모차르트 곡을 연주했다. 일곱 살 때는 바르셀로나 국립음악원에 들어가 작곡과 피아노, 지휘 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사업가였던 아버지가 반대해 결국 법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대학 졸업 후 변호사 생활을 거쳐 외교관 시험에 합격해 외교부에 들어갔다. 그가 외교관의 길을 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세계 각지를 돌며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음악에 필요한 창의성을 키울 수 있겠다고 판단했죠. 또 본국 정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시간관리만 잘 하면 하고 싶은 음악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음악과 함께하는 삶을 살기 위해 외교관의 길을 택한 결정은 적중했다. 그는 "여러 나라의 문화를 경험하는 것은 음악가에게는 커다란 행운"이라며 "매일 접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자연 속에서 무궁무진한 음악의 소재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음악은 그의 외교 생활에 큰 자산이 되기도 한다. "음악은 만국 공통어잖아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데 음악만 한 게 없죠."

국악에도 심취해 국악 연주회라면 빼놓지 않고 찾아가고 차 안에서도 늘 국악을 듣는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영감을 얻은 곡은 아직 미완성이다. 그는 "한국의 산하가 너무 아름다워 모든 것이 음악적 소재가 될 정도"라며 "지금은 곡을 구상하는 '임신'기간으로, 나 자신도 어떤 아기가 나올지 자못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열 번쯤 국내외 무대에서 직접 지휘도 한다. 책도 일곱 권이나 냈다. 현재 여덟 번째 책을 집필 중이다. 현대 무용에 관한 논문으로 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대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주한 스페인 대사로서 어떤 부문에 역점을 두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한국과 스페인 간 무역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스페인'이란 국가 브랜드를 최대한 홍보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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