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발전과 민족자주|이대근<성대교수·경제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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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전후 정치적 독립을 가져온 제3세계 나라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두 가지 시대적 과제에 직면했다. 한편으로는 지난날의 식민지 유산을 청산하고 하루 빨리 튼튼한 민족자주국가를 건설해야만 하는 민족적 자주화의 과제를 안고, 다른 편으로는 낙후된 생산력을 시급히 발전시켜 빈곤을 타파하고 공업화를 이룩해야만 하는 경제개발의 과제에 부닥쳤던 것이다.
이 두 가지 과제는 처음부터 서로 보완적이라기 보다는 대립적인 관계에 놓였다. 왜냐하면 민족적 자존과 긍지를 결집시킴으로써 의욕적인 경제개발을 추구할 수 있다고 하는 점에서 서로 보완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보다 빠른 경제개발을 위해서는 선진국(회식민모국)의 앞서가는 자본과 기술을 이용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곧 그들의 민족적 자주성을 해치게 될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는 서로 대립적인 관계도 된다.
설령 어떤 나라가 이 두 가지 과제를 보완적으로 추구코자 하는 자립적 개발의 길을 걷고자 하더라도 선진국은 그러한 길의 이행을 쉽게 용납치 않는다고 하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전후에 들어서도 그들의 제국주의적 간섭·책동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두 가지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전후 수많은 제3세계 나라들이 지향하는 길은 다양했다. 철저히 자주화의 길을 쫓은 나라가 있는가 하면, 철저히 경제개발에만 열중했던 나라도 있었다.
인도·버마 등의 서남아시아 제국이나, 아랍 사회주의 내지 아프리카 사회주의를 내건 나라들이 전자에 속한다면, 아세안중심의 동남아제국이나 중남미 일부 나라들은 후자의 카테고리에 들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오늘날 세계적 주목의 대상이 된 속칭 「신흥공업국」이란 나라들의 경우는 어떤가.
한마디로 민족적 자주화의 과제는 내팽개친 채 오로지 경제개발에만 목을 매달아 온 경우라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그들은 항상 제3세계의 집단적 자주화의 요구를 외면한 채 선진국에 빌붙어 사는 삶의 방식을 채택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들 중 일부는 제3세계 나라들의 자주화를 위한 국제기구에 가입조차 허용되지 않았고, 일본 다음으로 서양흉내를 잘도 내는 원숭이격으로 치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탄 속에서도 그들은 생산력발달에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처음에는 그러한 경제개발방식에 상당히 회의적이었던 게 사실이나 이제 현실로 나타난 그들의 산업자본 축적 수준을 굳이 부정할 수는 없게끔 되었다.
그렇다면 신흥공업국화의 길이 옳았던가. 반드시 그렇게는 말할 수 없다. 자주화의 요구를 외면한 채 경제개발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그들은 내부적으로 많은 모순을 축적했다. 외국자본과 기술에 그들의 안마당까지 놀이터로 내줌으로써, 그리고 그 안마당을 가꾸는 정원사에게는 말할 수 없는 장시간 저임금노동을 강요함으로써 갖가지 모순들을 중점적으로 심화시켜놓았다.
또한 그러한 모순들을 극복코자 하는 내부의 민주화 및 자주화세력에 대해서는 계엄령이다, 긴급조치다 하여 온갖 억압수단을 총동원하였던 것도 엄연한 역사적 경험이다.
한 사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요구 중 어느 한쪽만에 치우치는 것은 결코 오래갈 수 없는 법. 시대는 바뀌어 이제 이들 나라에서도 자주화의 요구가 전면에 부상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특히 분단체제 아래 있는 나라에서는 이 자유화의 요구는 곧 민족통일에의 요구로 승화되고 있다. 오늘 우리 주위에서 일고 있는 자유화와 민족통일 운동의 열기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자주화와 통일에의 요구는 어떤 방향으로 추구되어야 할 것인가. 그 속에서 또한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경제개발의 요구와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할 것인가. 이점이 바로 우리 시대가 풀어야 할 초미의 과제다.
여기서 그를 위한 어떤 처방전을 띨 형편은 아니다. 다만 기본적 입장 정리와 관련하여 몇 가지 소박한 생각을 피력해 본다면, 무엇보다도 생산력 발달의 문제가 역시 중요하다 함을 강조해 두고 싶다는 것이다. 자주화를 위한 우리 내부의 힘의 축적도 따지고 보면 그간의 경제개발의 성과를 바탕으로 이룩된 것이지, 켤코 우역은 아니라고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생산력의 발달을 수반하지 않는 생산관계만의 변혁을 추구하는 것은 이미 세계사의 흐름에서 비판되고 있음을 정확히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민족적 자주화를 요구하는 것도 우리 내부의 생산력 발달을 억압하는 외세의 침략 내지 제국주의의 반동성을 척결하자는데 있다면, 고쳐 말하여 민족주의의 요구가 왜곡된 생산력체계를 바로잡는 것까지는 좋지만, 생산력 발달 그 자체를 저해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오늘의 한국 민족주의는 감상적이거나 국수적인 방향으로 흘러서는 안되고, 국제주의와 잘 조화된 한층 개방적이고 실익적인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할 것임을 첨언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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