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소득·물가 사이서 "고심"|양곡수매 국회동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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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임시국회에서 양곡수매가격결정이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양곡관리법이 개정됨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연초이후 불안한 상승세를 보여온 물가와 관련해 올해 쌀 수매가 결정이 주요 관심사로 부각되고 있다.
경제기획원과 농림수산부 등 관계부처에서는 이 고비를 어떻게 넘겨야할지 벌써부터 우려가 커가고 있다.
지난해 추곡수매가 14% 인상이 공무원봉급 13.6% 인상과 함께 두 자리 수의 인상행진을 낳았다는 사실과 국회동의라는 절차가 결국 고율의 수매가 결정이라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이들 부처관계자들의 걱정을 충분히 짐작할만하다.
특히 물가당국인 경제기획원으로서는 당초 억제 목표선을 후퇴시켜 그나마 올해 물가상승률을 6∼7%(소비자물가) 선에서 잡아보려다 복병을 만난 셈이다.
추곡수매가결정의 국회동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50년 양곡관리법 제정 때부터 국회동의절차를 밟아오다 72년 유신 때 폐지했다. 이를 여소야대로 모양이 바뀐 국회가 지난번 임시국회에서 양곡수급계획과 더불어 쌀-보리의 수매가·수매량 결정은 국회를 거치도록 법안을 개정한 것이다.
경제성장 우선 속에 저곡가 정책이 60년 이후 지속되면서 농산물 가격지지를 통한 농촌소득향상은 그 동안 줄곧 뒷전에 밀려왔고 이 때문에 농민들은 특히 정부의 독단적인 쌀 수매가결정에 불만을 품어온 게 사실이다. 이것이 결국 지난해는 민주화바람과 함께 분출해 14% 인상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쌀 수매가 결정을 국회에 맡길 경우 정치적 고려가 경제적 판단보다 우선할 가능성은 무시할 수 없다. 원래 상품가격은 시장수급상황에 따라 자율로 결정되는 것이 원리므로 불가피하게 정부가 가격을 관리할 수밖에 없는 쌀값도 경제여건을 1차적으로 고려해 결정해야하며 그렇지 않을 때는 물가와 재정운용에 큰 장애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정부는 양곡수매가결정이 최근 정치·사회여건변화로 표적이 될 듯 싶자 서둘러 생산자·소비자, 그리고 학계 등 중립인사로 구성된 양곡유통위원회를 지난 6월에 서둘러 설치했다. 미리부터 농민들의 입장을 수렴해왔더라면 현재의 우려는 더 덜 수 있고 모양도 좋게 가꿀 수 있었을 것이다.
물가안정 측면에서 들여다보면 쌀 수매가결정문제는 올해 물가관리에 초점이 되고있다. 쌀 수매가격 인상이 곧 일반미에도 그대로 반영된다는 경험에 비춰보면 수매가를 10% 올릴 경우 소비자물가는 0.72%, 도매물가는 0.44%의 직접상승요인이 생긴다. 그러나 문제는 쌀 수매가인상폭이 일종의 가이드라인처럼 돼 임금인상·공무원봉급 인상 등 모든 물가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현실이다.
쌀 수매가를 결정할 때 또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생산자가 있으면 소비자도 있고, 또 농가소득에서 쌀 소득의 비중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수매가인상만이 유일한 농촌소득증대방안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는 일단 양곡유통위원회를 8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 농림수산부가 이 위원회의 수매가건의를 받아들인 뒤 10월중에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 동의를 받는다는 계획이다.
결국 칼자루는 국회가 갖게됐으나, 양곡수매가 국회동의로 국회도 물가안정 등 경제정책에 책임을 지게 된 셈이다.
올해 추곡수매가가 어느 선에서 결정될지는 미지수이지만, 최근의 물가불안을 고려할 때 그 동안 농민들이 받지 못했던 보상을 일거에 얻고자할 것이 아니라 몇 년을 두고 나눠 해주는 것도 설득력 있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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