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쇠고기부족」서 명분찾아|쇠고기 수입재개 3년만에 왜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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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농민들의 끈질긴 반대와 야당의 강력한 추궁에도불구하고 쇠고기 수입을 재개키로 단안을 내렸다.
정부가 이같은 결단을 내린배경에는 미국의 거센 시장개방 압력과 국내의 쇠고기 공급부족이라는 두가지 여건이 맞물려 국내의 반대여론을 극복할 명분을 주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85년5월 우리정부가관광호텔용 쇠고기수입을 중단한 직후부터 꾸준히 수입재개압력을 가해왔다. 특히 87년11월 한미통상 마찰이 격화되면서부터는 미통상법301조 발동및GATT(무역·관세 일반협정) 제소를 무기로 노골적인위협을 가해왔다.
더우기 88년1월 부총리가 미국을 직접 방문, 미국의 301조 발동을 무마하는 과정에서관광호텔용 쇠고기수입을 약속함으로써 쇠고기수입은 정부내에서는 사실상불가피한 일로 인식돼 왔다.
다만 시기만이 문제로 남아있었다고 할수 있다.
여기에 쇠고기수입을 이 시점에서 단행하지 않을수 없게 만든 것이 국내 쇠고기 공급부족현상이다.
국내 소 사육수는 또85 2백94만마리를 정점으로 계속 감소추세를 보여왔다.
85년에 2백94만마리였던 사육마리수가 87년말에는 2백10만마리로, 그리고 88년 6월에는2백20만마리로 줄었다.
사육수의 이같은 감소는 물론 과잉사육에 따른 가격하락이 원인이었지만 이체는 지나치게 줄어 국내 수급기반마저위협하게 된것이다.
농수산부의 계산으로는 현재송아지생산이 60만∼65만마리수준으로 이대로가면 연말에는 2백만마리수준으로 떨어져 장기적으로 소사육기반유지에 필요한 2백10만마리 수준을밑돌 전망이다.
올해 쇠고기수요량은 15만4천t(95만∼1백만마리)인데1만5천t(10만마리)내외를 국외에서 수입하지 않으면 국내 사육기반이 붕괴된다는 얘기다. 정부가 농민의 거센 반발에도불구하고수입재개 결단을 내린데는 이같은 사정이 깔려있다.
그렇다고 해서 결단의 과정이 용이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농민·학자·야당을대상으로 공청회·토론회등여론무마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정부수립후 처음으로 윤근환농림수산부장관은 야당정책위의장들을 초청, 오찬을 함께 하며 쇠고기문제 브리핑을 하기도했다.
이와함께 쇠고기가격 안정대·하한가격제 실시·축산자금 지원확대·사료관세 인하등 설득력있는 보완대책을 내놨다.
수입재개가 결정돼 이달내에축협·농협·소비자단체출자로 축산물유통사업단이 발족, 8월부터 쇠고기수입이 재개된다.
배편으로 미국이나 호주에서쇠고기가 수입되려면 발주후 약75∼90일 걸리지만 올림픽용은시간이 없기 때문에 항공편으로8월말까지는 1차분이 도착하게 된다.
한편 쇠고기 수입결정이 늦는다는 미국의 채근과 이에 반대하는 농민사이에 끼여 안팎곱사등이가 됐던 정부가 어렵게단안을 내렸지만 이로써 문제가해결된 것은 아니다. 앞으로 헤쳐나가야할 길은 첩첩산중이다.
쿼타제 수입에 따른 미국과농민의 불만, 미국·호주·뉴질랜드에 대한 쇠고기수입 안배문제·국내시판가격 조정·보완대책에 따른 재정압박등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직도 많다.
미국은 쿼타제와 축산물유통사업단에 의한 수입재개를 근본격으로 반대하고 있다.
쿼타제는 자유무역원칙에 위배되고 축산물유통사업단으로 수입창구를 일원화한 것은 수입물량을 조절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지금 당장 완전 수입자유화를할수 없다는 것은 인정하지만그대신 개방스케줄을 밝히라는것이변함없는 미국의주장이다.
따라서 정부의 이번 조치는협상분위기 조성용일뿐이다.
농민들은 농민들대로 불만이다. 올해는 우선 1만4친5백t을 수입할 예정이라지만 일본의 예에서 보듯 앞으로 수입물량은 점점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정부가 계속 가격지지 정책을 써줄 것이냐에 농민들은 지대한 관심을쏟고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도『가격 경쟁력으로 수입을 결정하라』며미국과의 차별대우는 용납 않겠다는 듯 엄포를 놓고 있다.
이같은 어려운 문제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국내축산계는 물론 정치권에의 파급영향도 좌우될 것이다.

<이석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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