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표절에 관대한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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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위직에 오르려는 사람은 젊어서부터 이 돈은 받아도 될지, 이 여행은 가도 좋을지, 이 땅과 집은 사도 될지 등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이 많을 것이다. 그런 번뇌의 순간이 많을수록 공직사회는 깨끗해질 것이다. 학자들에게도 그런 고민의 순간이 있다. 논문에서 남의 생각을 가져올 경우 정직하게 인용표시를 할 것인지가 그것이다.

최근 학자들이 공직에 오르는 경우가 많다. 학자들은 공직자들과 살아온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시험문제는 다르게 출제돼야 한다. 공직자 출신의 경우 재산 형성 과정이 핵심이라면 학자 출신은 논문.저서에 표절이 없는지가 핵심이다.

그러면 왜 표절에 엄정해야 하는가. 성경과 같은 경전에는 인용표시가 없다. 조물주가 하신 말씀이므로 근거를 댈 필요가 없어서다. 그러나 불완전한 인간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앞선 검증된 사상을 가져오려고 한다. 이것이 인용이다. 인용된 설의 권위에 따라 논문의 신뢰도가 좌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잡지에 논문이 오른 것도 중요하지만 그 같은 잡지에 인용된 횟수를 더 중시한다.

인용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은 책 도둑에 비유할 수 있다. 흔히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라는 옛말은 표절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도둑맞은 물건은 되찾아 오면 피해가 회복되지만 저작물은 그럴 수 없다. 저작물에는 재산권적인 속성에 인격권적인 속성이 아울러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소장 학자의 생각을 그 분야 대가가 인용 표시 없이 가져다 쓸 경우 후에 그 소장 학자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해 봤자 혼자만 우습게 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있다. 이런 점에서 책 도둑은 도둑도 보통 도둑이 아니라 질이 아주 좋지 않은 도둑인 셈이다. 표절이 만연하게 되면 어느 누구도 깊은 사유를 한 노작(勞作)을 내려 하지 않을 것이고, 싸구려에 가짜만 판치게 돼 결국 정신세계의 빈곤과 문화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미국에서는 법원 판결문에도 논문 등의 인용표시를 하고 있다. 이는 해당 판결의 설득력을 높이는 것 외에 학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연과학에서 저명한 논문지에 인용된 횟수가 중요한 것처럼 법학자들의 경우 판결에 자신의 논문이 인용됨으로써 실력과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 판결에 인용될 만한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면 더욱 좋은 글이 나올 것이고, 이는 판결의 수준도 높여 준다.

결국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만약 논란 속에 시간을 벌어 줄기세포를 만들었다면 그냥 넘어갈 수 있을까. 인용법을 지키지 않고 표절을 통해 질 좋은 논문을 발표하면 학자로서 비윤리적인 행위는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청문절차가 공직사회에 대한 감시견(watchdog) 역할을 하듯 학계에 대한 감시견은 엄정한 표절기준과 인용법의 확립이다. 결과지상주의는 1970, 80년대 고도성장의 그늘이라고 한다. 모로 가더라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한 줄기세포 사건은 언제 또 발생할지 모른다.

글을 정직하게 써야 하는 것은 비단 공직에 오르려는 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가 아니다. 지식산업 입국을 표방하는 우리나라가 세계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어려서부터 정직한 글쓰기를 배워야 한다. 서울을 가지 못하더라도 바로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남형두 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